日日是好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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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상가상(雪上加霜)이란 말과 같이 일이란 대개 몰려다니는 경향이 있다. 파킨슨약이 안 맞아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좌골 신경통인지 뭔지가 악화되어 거동이 심히 불편하다. 늙어가는 길을 배우는 것이 지난하다.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후퇴를 거듭 하다 보니 자존감을 지키는 일도 쉽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중 바이런 경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역시 최고의 무기는 '텅 빈 충만함에서만 가능한 관점의 변화' 다.

 

- 神의 물방울

 

19세기 옥스퍼드 대학 종교학 과목 시험에 출제된 주관식 문제.

 

"물을 포도주로 바꾼 예수님의 기적에 대해 논하라"

 

시험시작 종이 울리자 일제히 답안지에 펜촉 닿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렸지만

유독 한 학생만은 멍하니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감독관이 다가가 주의를 주었지만

학생은 시험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시험 종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학생의 멍때리기는 계속됐다.

 

화가 난 감독 교수가 다가가 백지 제출은 당연히 영점처리고 학사경고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

뭐든 써 넣어야 한다고 최후통첩 했다.

 

이 말에 딴청을 피우던 학생이 돌연 시험지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정말 단 한 줄만 써놓고 고사장을 유유히 빠져 나갔다.

 

달랑 한 줄짜리 답안지.

이 답안지는 옥스포드대학 신학과 창립 이후 전설이 된,

만점 답안지이다.

 

그는 영국의 3대 낭만파 시인 중 한 사람인 조지 고든 바이런이다.

대학의 모든 신학교수들을 감동시켜 올 하트 받은 바이런의 한 줄 답안은 이랬다.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을 붉히더라"

 

두보가 좌우명으로 여겼던 語不驚人 雖死不休 (어불경인 수사불휴)에 어울리는 이야기다.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에도 전설처럼 전해지는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신학대학에서의 시험은 보통 교수가 당일 시험시간에 오셔서 칠판에 문제를 적고, 학생들은 8절지 정도의 큰 백지에 답안을 쓰는 주관식이다. 그 유명한 문제는 히브리 노예들이 이집트를 떠나서 올 때 아직 부풀지도 않은 밀가루 반죽을 둘러메고 간 이유는 무엇인가? 이었다. 성서에 관한 것이면 무조건 거룩한 것으로 여기는 습성이 밴 신학생들은 신약시대의 성체성사를 예표하는 것이라는 등 온갖 그럴듯한 이유를 댔다. 어떤 부제는 8절지로 7장을 썼다고 한다. 교수님은 그 학생에게 7점을 주었고…….ㅋㅋㅋ! 정답은 “바빠서! 이었다. 이집트인 몰래 달아나는 와중에 언제 밀가루가 발효되길 기다릴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있었겠는가? 건전한 상식을 넘어서는 진리는 그리 많지 않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이야기도 신학적으로 설명하자면 궤변을 늘어놓아야 할 터이나, 바이런처럼 인간미 물씬 풍기는 몇 마디 말로 공감을 자아내어 멋있게 해결하지 않는가!

 

부활하신 예수는 당신의 제자들이 뭔가 중뿔나게 특별한 일을 하는 상황에서 나타나신 게 아니다. 그들이 이전에 늘 하던 일상을 다른 눈으로 보며 살 때 나타나신다.

 

자신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 볼 수 있을 때, 물의 마음도 보이게 되어 공감각(共感覺)적인 감응(感應)이 가능했으리라! 토마도 실제로 손을 넣어보아서 믿은 게 아니다. 그도 공명(共鳴)에 의한 감응으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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