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日是好日

2021.04.14 16:25

수수꽃다리(라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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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부득이한 일로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우이동의 백운천 길을 조금 걸었다. 지난 이틀간의 비로 계곡의 물소리가 제법 크다. 때마침 낙화의 시절이라 바람에 날리는 벚꽃과 복사꽃잎이 계곡의 물에 실려 흘러가는걸 보니 이백이 보던 것을 천여 년의 시공을 넘어 같이 보고 느끼는 듯하다.

 

산중문답 山中問答 - 이백(李白)

 

문여하의서벽산 問余何意棲碧山 어찌하여 푸른 산에 사느냐고 묻길래

소이부답심자한 笑而不答心自閑 웃으며 대답하지 않아도 마음 절로 한가롭네

도화유수묘연거 桃花流水渺然去 물 따라 복사꽃잎 아득히 흘러가는데

별유천지비인간 別有天地非人間 이곳이야말로 딴 세상이지 속세가 아니라오 이백(701~762)

 

이백의 산중문답은 김상용(1902~1951)의 시 ‘남으로 창을 내겠오’와 김동환(1901~?)의 시 ‘웃은죄’가 혹 표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한다.

 

남으로 창을 내겠오 / 밭이 한참갈이 // 괭이로 파고 / 호미론 김을 매지요 // 구름이 꼬인다 갈리 있소? / 새 노래는 공으로 들을랴오 // 강냉이가 익걸랑 / 함께 와 자셔도 좋소 // 왜 사냐건 / 웃지요 <김상용>

 

지름길 묻길래 대답했지요 / 물 한 모금 달라기에 샘물 떠주고 / 그리고는 인사하기에 웃고 말았지요 / 평양성에 해 안 뜬 대두 / 난 모르오 / 웃은 죄밖에 <김동환>

[열린순창 “햇살속시한줄(23) 산중문답 이백”에서 인용.]

 

 

근 2년째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뻔뻔하기 그지없는 일본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방류결정 또 이를 지지한다는 미국의 성명, 부동산 폭등에 대한 언론들의 앞뒤가 맞지 않는 두 얼굴등 맨 정신으로 살기에는 너무도 가혹한 현실이다. 이런 환경 하에서도 우리들 대다수가 미치지 않고 또 푸른 산으로 물러나지 않고 지금 여기서 견딜 수 있음은 나름대로 자신만의 청산이 있거나 별유천지에 다녀올 수 있기 때문일 게다.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을 붉히더라” 나 “왜 사냐면 웃지요” 같이 잠깐만이라도 전혀 다른 눈으로 이 세상을 볼 수 있는 시인 같은 사람은 vision 이 없는 사람과는 달리 자기만의 소도(蘇塗)에 머물 수 있다. 계곡물에 실려 떠내려가는 꽃잎을 보며 백운천을 따라 조금 걷다 내려오는 길에 올해 처음 핀 수수꽃다리(라일락) 를 만나다. 파킨슨 병으로 향기는 맡을 수 없었지만 반가왔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소경으로 태어났다는 말처럼, 어떤 사건의 의미는 그 후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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