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가 살던 행성은 아주 작았으므로 마음이 견딜 수 없이 슬픈 날은 마흔네 번씩이나 의자를 뒤로 물려가며 해지는 것을 보면서 쓸쓸함을 견디어 낼 수 있었을 거야. 어렸을 때라고 하기보다는 젊었을 때 가끔씩 아무런 이유 없이 해질 녘이 되면 마음이 허허러워 지면서 마치 하늘과 땅사이에 홀로 선 듯한 적막감에 빠져들곤 했지. 그런 기분은 연말이나 졸업식, 사은회, 임종, 호스피스와 연분이 있지!
온 세상에 홀로 있는 듯한 적막감이 망상을 동반한 우울증으로 발전하지 않고 좌망으로 진도가 나간 것은 행운이기도, 은총이기도 할 거야. 은총은 자연의 완성이니! 러시안 수도원에서 어머니의 장례를 치룬 어린 지바고는 그 수도원의 수도사였던 외삼촌과 함께 그 밤을 지낸다. 한 밤중 바람소리에 잠을 깬 지바고는 갑자기 자신의 처지를 깨닫는다. 외로이 추운 눈보라 속에 홀로 누운 자신의 어머니와 이제 그런 세상에서 홀로 살아가야 할 자기의 처지가 별반 다르지 않음에 울음을 터뜨린다.
35년 전 전남 두륜산 대흥사에 딸린 말사였던 상원임에서 선 수련을 할 때도 일몰이면 그런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곤 했다. 마음이 안정되고 정화되어가면서 일몰 때의 기운은 마치 Domenico Scarlatti 의 기타 소나타 같은 느낌으로 점차 질척이는 것으로부터 산뜻한 부드러움으로 바뀌어 갔다.
음력설이 며칠 안 남았다. 예전과는 사뭇 다르게 명절 때면 수도원도 더 적막하게 된다. 음력으로 년말이라고 방송국에선 Auld lang Syne을 들려준다.
https://www.youtube.com/watch?v=OFDUKrDI5y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