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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태 안드레아(서울 글방)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본다.

먼저 이목구비의 인상적인 얼굴이 눈에 확 띄고

아직도 뜨겁게 뛰고 있는 가슴(심장)이 살아 있음을 알린다.

도구적 인간(호모 파베르)으로서의 멀쩡한 사지(손과 발)가 눈에 들어온다.

지금까지는 내 모습이 눈에 보이긴 했지만 유심히 보려고 하지 않아

눈을 눈으로 자세히 살펴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이야기 하나.

내가 아주 어릴 적 일이다.

어머니가 시골에서 농사 일을 하시느라 아기를 잠시 맡기려고 하면

서로 보려고 쟁탈전이 벌어졌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전설 같은 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아이의 얼굴이 너무 복스럽고 귀여운데다가 눈동자가 똘망똘망하고 초롱초롱해

동네 아주머니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는 증언들을

지금도 시골에 가면 종종 들을 수 있다.

 

이야기 둘. 

학창시절의 연애담이다.

대학 다닐 때 사귄 여자친구는 나보다는 내 눈을 그렇게 좋아했다.

내 눈 속에 신비가 들어있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고 감탄하곤 했다.

심지어는 여친이 잔디밭에서 나를 제 무릎에 뉘이고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아 민망한 적도 많았다.

그래서 ‘사랑은 눈으로 말해요’란 노랫말도 있나 보다.

세월을 이길 장사 없다고 지금은 이렇다 할 감흥을 일으키지 못하는

그야말로 기능적인 ‘보는 눈’에 지나지 않게 됐지만 말이다.

우리는 눈을 가리켜 ‘영혼의 거울’이라고 한다.

고래로 동서양의 성현들은 인간의 육체 중에서

그 사람의 영혼을 감지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눈이라고 했다.

마음과 영혼이 머무르는 곳이 눈이라는 심오한 설파다.

눈은 타인의 세계를 훔쳐보는 창이 아니라 스스로의 모습을 비추는 마음의 거울이다.

진정한 사랑은 창을 통해 내다보는 게 아니라 거울을 통해

우리들의 내면 풍경을 반추해 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눈은 메마른 영혼을 촉촉이 적혀주는 ‘위로의 눈’이어야 한다.

 

사람을 알아보는 데는 눈동자만큼 더 좋은 게 없다.

눈동자는 악의 씨앗을 덮지 못한다.

흉중이 바르면 눈동자가 밝고 마음이 비뚤어지면 눈동자가 어둡다.

이제라도 내 눈동자가 사랑의 돋보기를 얹힌 확대경이 되었으면 한다.

‘신비는 신비를 낳는다’는 말처럼 눈을 통해 영혼의 신비를 불러내

사랑의 등불을 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눈은 선을 행하는 일차적 관문이다.

눈은 머리에 달려 있지만 가슴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강도에게 맞아 쓰러져 있는 유대인을 사제와 레위인은 그냥 지나쳤는데

사마리아인이 부축해 여관으로 데려가 치료하고 간호해준 것도

사마리아인은 그 유대인을 가슴으로 보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은 엄청난 차이다.

본다는 것은 적극적인 가슴을 필요로 한다.

그냥 보인다는 것은 레위인이나 어떤 사제처럼 그들도 눈으로 보이기는 하나

가슴에 와 닿지는 않다는 또 다른 구별이다.

 

우리는 사물을 파악하는 기능적인 눈을 갖고 있다.

‘보다’와 ‘보이다’의 차이는 행동주체의 의지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행동주체의 특별한 의지 없이

시야에 들어오는 장면을 지칭할 때는 보이다라는 피동형을 사용하고

의지적으로 대상을 특정하여 바라본 경우에는

보다라는 적극적인 표현을 쓴다.

어떤 면에선 심각한 차이가 없어 보이는 두 단어의 구분이

실제 신앙생활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를 빚어내기도 한다.

신앙인과 세인에게는 본질적인 시선의 차이가 가슴의 차이로 나타난다.

보이는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보는 눈을 가지려고 성심을 다하는 것이

그리스인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눈과 소통하는 가슴이 영혼을 구원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유홍준 작가의 문화유산답사기 인용 말이다.

사랑하면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의미를

유려하게 풀이해 세인의 관심을 받은 적이 있다.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것이 물리적인 눈으로 보이든 보이지 않든

눈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는 온 마음을 통해 느끼고 알게 된다는

가장 순수하고 원초적인 고백이다.

 

누구에게든 가장 긴 여행은 자기 내면으로의 여행이다.

그 긴 내면으로의 여행에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되면 눈동자가 흐려진다.

죽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의지적인 눈이 살아 있을 때 우리를 구원의 길로 안내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시어 죽임 당하시고 부활까지 하신

예수님의 영성을 가슴으로 본받아 더욱더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심미안을 가져야겠다는 각오를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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