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2019.04.18 07:01

주님 만찬 성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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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카 성삼일의 첫날인 성목요일입니다.

오전 중 각 교구 주교좌성당에선 성유축성미사가 봉헌되었습니다. 오늘 성목요일 전례의 핵심은 복음낭독-세족례-최후만찬 전례로 이어집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참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 계시네.>라는 노랫말에 다 함축되어 있다고 봅니다.

 

세족례(=요한복음)와 최후만찬(공관복음)은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참 사랑’을 다른 시선에서 접근하고 표현하는 교회의 이해입니다. 오늘 복음과 복음의 재현인 세족례를 묵상하면서, 한 때 <계급장 떼고 합시다.>는 말이 인구에 회자된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이 새로운 의미로 제게 다가옵니다. 예수님은 정말이지 계급장을 떼고 제자들의 시선에서 그들에게 마지막 가르침인 <섬김과 사랑>의 수업을 하신 것입니다.

 

복음의 시작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시고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Jn13,1)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오히려 남아 있을 제자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남김없이 다 쏟아내십니다. 이 사랑의 첫 표현은 <겉옷>을 벗으신 것입니다. 겉옷을 벗는 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연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의 본래의 신분이나 직책을 내려놓은 것과 같습니다. 결코 겉옷을 걸치고서는 어떤 일을 해도 진솔성과 진정성을 보여 줄 수 없으며 인위적이고 의도적인 행위로 비춰질 것입니다. 섬기는 사람의 자세를 갖추기 위해 예수님은 겉옷을 벗으신 것입니다. 마치 계급장을 떼지 않고서는 동등한 시선에서 만나고 소통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겉옷을 벗는 것은 섬김을 위한 전제 조건이며, 무릇 섬김을 살려는 사람은 그런 마음가짐을 가져야 참된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연극적인 행위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겉옷을 벗음은 비움이며 낮춤이고 곧 섬김의 전제 조건입니다.

 

겉옷을 벗으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종의 자세로 제자들 앞에 엎드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겉옷을 입으시고 다시 식탁에 앉으셔서,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Jn13,14.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다음에 제자들에게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고 당부하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 당대의 모든 사람들은 포장되지 않은 길을 샌달로 걷다보면 가장 더러워진 부분이 발이었기에 손님에 대한 환대의 표시로 발을 씻어 주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스승이며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종처럼 낮아지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혼란스럽고 충격적이었으며 당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베드로의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합니다.>라는 표현에 제자들의 마음 상태를 읽을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단호하시게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13,8)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단순한 스승과 제자 사이의 기싸움이 아니라 섬김을 받느냐 받지 않으냐는 것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맺느냐 맺지 않느냐는 것이며, 이후에 하실 당부말씀을 실천하느냐 하지 않느냐와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섬김을 받는다는 것은 당신이 떠난 다음 제자들 상호간에 누가 더 높고 낮은 가로 인해 불화와 불목, 갈등과 상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배려의 차원을 담고 있다고도 보여 집니다. 섬김의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겠지만 굳이 발 씻김을 통해 하신 까닭은 더러운 길을 걷노라면 피할 수 없이 발이 더러워지고 상처받을 수밖에 없을 텐데 더러워진 발을 씻겨줌으로써 발과 보이지 않는 몸 전체와 더 나아가서 내적인 더러움에서 깨끗함으로, 상처받음에서 치유받음으로, 죄스러움에서 죄사함으로 거듭나게 해주신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의 더러움과 수치스러움을 씻어주고 감싸주며 덮어주려는 사랑이었습니다. 즉 보이는 부분을 씻음으로 보이지 않는 마음의 죄를 씻어 주시는 성사적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은 부담스러우면서도 스승의 의도를 깨닫고 난 뒤 감사하며 그 사랑을 평생 잊지 못하고 스승의 본을 받아 살려고 부단히 노력하였으리라 믿습니다.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사랑할 수 있듯이, 섬김을 받아 본 사람이 섬기는 사람이 되고 섬기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 봅니다. 섬김은 곧 바로 그리스도인의 표지이며, 섬김은 참된 제자의 삶으로 이를 실천하기 위해 주님처럼 끊임없이 낮아지고 비우고 죽지 않을 때는 결코 실행할 수 없습니다. 이런 섬김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 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실행하라.>(1코11,26)고 당부한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서로의 발 씻김을 통해서 주님으로부터 섬김 받음을 기억하며 섬기는 삶을 살아가야겠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Jn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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