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2019.10.04 07:18

연중 제26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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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삶을 살아오면서 우리가 가장 사랑하고 싶은 이들이, 많은 경우 가장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사람들과 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누구 때문이든지 그 관계가 잘못될 때엔 가슴에 상처로 남는다는 사실입니다. 예전 보았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가슴에 와 닿았던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가 지금도 마음에 남아 흐르고 있습니다. <‘동생의 죽음에 대해 정말 네가 아는 모든 것을 다 나에게 다 말했니?’ 아버지가 물으셨다. ‘다 말했어요.’, ‘별로 할 애기가 많지 않지, 그렇지?’, ‘네’라고 나는 대답했다. ‘하지만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어요.’, ‘나도 그것을 알고 그렇게 설교해 왔단다.’라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그렇습니다. 저의 부족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는 대목이며 지금 제가 제 형들과 아직 매듭을 풀지 못한 문제입니다. <삶이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계속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오늘 복음의 코라진, 벳사이다와 카파르나움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꼭 들어야 할 말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코라진, 벳사이다 그리고 카파르나움에서 주로 활동하시면서 많은 가르침과 기적을 행하였지만, 이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많은 기적을 이방인 지역인 띠로와 시돈에서 보였더라면 그들은 벌써 베옷을 입고 재를 들쓰고 회개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10,13참조) 이런 배경 하에서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이들 도시가 불행해지는 것을 바라시는 것 같이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마치 부모가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는 자식에게 안타까운 심정에서 <애야, 이제 제발 정신 좀 차려라. 너 그렇게 살다가 불행해진다!>라고 야단치시는 것처럼 들릴지 몰라도 야단이 아니라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자식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자식의 불행은 곧 부모의 불행인 것처럼 코라진, 벳사이다와 카파르나움의 불행은 곧 예수님의 불행이며 고통이기 때문이기에 예수님께서는 안타까움에서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세상에선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스스로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랑이란 이름의 자유인 것입니다. 그가 이해하지 않으면 변화시킬 수 없는 사랑의 무력함 앞에 예수님은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닫힌 인간의 영혼을 열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닫힌 문을 열고 나오시도록 다만 문을 두드리실 뿐입니다. 변화되기를 바라시고 변화할 수 있도록 은총과 사랑을 베푸실 뿐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오기를 기다리시고 참아주실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말을 듣는 사람은 나의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배척하는(=물리치는) 자는 나를 배척하는(=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배척하는(=물리치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배척하는(=물리치는) 사람이다.>(10,16)하고 말씀하신 것도 사실 제자들에게 격려하기 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 역시도 코라진, 벳사이다와 카파르나움의 경우처럼 온 몸과 마음으로 사랑을 쏟아 부었지만 여지없이 배척을 받았음을 환기시키면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어디서든지 어떤 일(=배척과 거부 등)을 겪던지 결코 실망하거나 의기소침하지 말고 꿋꿋이 <하늘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치유하는데> 모든 힘과 열정을 집중하도록 격려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좋은 결실을 맺지 못한다 하더라도 자책하거나 낙담하지 말 것을 당부하신 말씀이라고 느껴집니다. 이는 단지 일흔두 제자만이 아니라 세상에서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모든 이들에게 대한 지지와 격려인 것입니다. 아버지와 당신 그리고 우리를 한 운명공동체로 묶어 주시고 우리의 사명의식을 고취하시려는 당신의 깊은 배려와 지지를 표명하신 것으로 알아듣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이웃과 함께 나누기를 원하지만 때론 그들의 닫힌 마음을 열지 못할 수도 있고 그로인해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선한 의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고 배척하는 그들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릴 수도 있습니다. 허나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작가가 우리에게 전한 메시지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었다면, <그들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해도 완전히 사랑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 진정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을 귀하게 여기고 체험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해도 사랑하려는 그 모습이 진정 예수님께 큰 기쁨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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