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2019.10.13 07:46

연중 제28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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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수도회 입회한 후, 1971년 5월 저희 수도회 신부님들 그리고 피정센타 직원들과 함께 처음으로 소록도로 소풍을 갔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여름 방학 때 소록도 성당에서 머물면서 멕시코 민신부님을 도와 환우들과 더불어 지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이후 여러  차례 다시 방문하면서 과달루페 신부님들, 그리고 오지리에서 오신 큰 할메 마리안느와 작은 할메 마카렛을, 그리고 몇 분의 젊은 나환우 형제들과 오래도록 관계를 이어 왔지만 세월의 흐름처럼 다들 세상을 떠났고, 다른 정착지로 떠난 이후 멀어졌지요. 훗날 제 아버지는 제가 그 곳에서 봉사활동을 한 소식을 듣고 걱정과 함께 굉장히 대견스럽게 생각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당시만 해도 아직 나병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많았고 감히 가고 싶지 않은 금단의 땅처럼 소록도에 가는 것을 기피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곳에서 만났던 소록도의 천사들과 나환우 형제들을 통해서 제 성소를 더 굳게 할 수 있는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그들을 도운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저에게 이미 시작한 사제의 길을 더 충실히 걷도록 자극하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오늘 복음(Lk17,11~19)은 치유 받은 열 사람의 나병환자에 대한 얘깁니다. 그런데 치유 받은 열 사람 중에 오직 이방인 한 사람만 돌아와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이방인들을 위한 복음인 루카복음에만 나오는 얘기이니 루카복음 사가의 창작품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유대인 나환자들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지만 아무튼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실 지금은 나병에 대한 이해가 많아졌고 편견도 많이 사라졌지만 복음에 기록된 대로 나병은 당시엔 치유가 불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었습니다. 불가능한 처지에 있던 10명의 나병환자들은 자신들의 수치스러운 질병과 가족들과 격리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들의 마을을 찾아오신 예수님께 몰려와서 예수님의 이름을 소리 높여 부르면서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17,13)라고 애원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호소하는 경우는 아주 간절하게 자신들의 염원을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표현이듯이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무척 친근하게 들리리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분께 희망을 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님께 절대적 신뢰를 갖고 있다는 표현인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베드로가 최고 의회에서 증언할 때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사4,12)고. 주님의 이름 자체가 생명의 원천이며 구원의 능력이고 믿음의 대상인 것입니다.

 

특히 나병과 같은 악성 피부병은 공동체에 끼칠 수 있는 전염성 때문에, 그 병에 걸렸다고 판단된 사람은 격리시켜 일반 주거지역에서 떨어져 살도록 했습니다.(민5,2). 그래서 나병환자들은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소리 높여 외쳤던 것입니다. 나병이 지니는 이런 특징 때문에, 주님의 치유는 육신적 치유뿐만 아니라 공동체와의 결합과 친교의 구원적 표시입니다. 여기서 구원적이란 의미는 불가능한 병으로부터 치료만이 아니라 그 병의 원인이 바로 자신의 죄로 인한 모든 상태에서 용서받고 해방되는 것입니다. 어떤 누구든지 주님께 대한 믿음이 있다면,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구원은 바로 구원을 절실히 필요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목마른 사람에게는 한 잔의 물이 필요한 것이지만, 더 근본적 해결은 물이 샘솟는 원천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10명의 나병환자가 치유 받았지만 결국 한명만이 주님께 돌아와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는 비유가 뜻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10명이라는 숫자가 상징하는 의미는 바로 신앙인 전체를 말합니다. 구원이 이미 우리 삶 안에 가까이 와 있지만, 아직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많은 말 중에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보다 더 따뜻하고 부드럽고 편안한 표현은 없을 것입니다. 그 말에는 풍요로움과 기쁨이 담겨있어서,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의 마음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삶, 감사하다는 것을 입술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병 환자 열 사람이 예수님께 치유를 받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한 사람만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예수님께 돌아와 발 앞에 엎드려 자신에게 베풀어진 치유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이어서 그에게 아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17,17~19)하고 말씀하십니다. 진정으로 감사할 줄 알았던 그는 단지 나병의 치료만이 아니라 예수님께 구원을 얻습니다.

 

저는 1978년 맨 처음 심장박동기 수술을 받고 난 뒤, 내 삶은 이제 <덤으로 주어진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한없이 감사하였지만, 잊고 살아오다가 베트남에서 살면서 <모든 것이 다 은총이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다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되찾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살아가면서 참으로 감사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님을 깨달아 갑니다. 모든 것이 다 감사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생명과 하루하루의 시간들, 그리고 가족, 친지, 친구들, 능력과 재능, 이 아름다운 세상의 모든 하늘과 땅과 바다, 강이며 산들, 아름다운 꽃들이며 저 다양한 나무들 ....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것들.  이 모든 것을  지금 내가 누리며 즐기고 있는 그 자체가 바로 하느님께서 저에게 거저 베풀어주신 선물입니다. 일상을 살면서 하느님께서 나병 환자처럼 사람들과 의미로운 관계를 맺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를 육적인 치료와 영혼의 치유를 통해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화해와 친교의 은총과 은혜를 거저 베풀어 주심에 감사하면서 살아야겠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란 그저 <하느님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리며 기쁘게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든 일을 기억하고 감사드리며 기쁘게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비로운 손길로 베풀어주시고 눈길로 감싸 주셨음에 감사하고 기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다 선물로 거저 받았으면서도 감사하기보다는 불평하거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리거나 무감각해진 것이 바로 감사하는 마음과 삶입니다. 

열아홉 살에 뇌막염을 앓아 앞을 못 보는 중증 장애인으로 살다가 세상을 떠난 배영희 시인은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아무것도 아는 것 없고, 건강조차 없는 작은 몸이지만, 나는 행복합니다. 세상에서 지을 수 있는 죄악, 피해 갈 수 있도록 이 몸 묶어주시고, 외롭지 않도록 당신 느낌 주시니,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세 가지 남은 것은 천상을 위해서만 쓰여 질 것입니다. 그래서 소담스레 웃을 수 있는 여유는 그런 사랑에 쓰여 진 때문입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분명히 이 시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감사보다는 불평을 더 많이 합니다. 적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고 했던 이 시인 앞에서 많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감사보다는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살아왔던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이번 한 주간을 보내면서, 진정 내가 감사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깊이 생각해 보며 하느님 앞으로 나아갑시다. 하느님은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놀라운 일을 하고 계십니다. 떠오는 빛나는 태양, 하늘에 떠있는 별들하며 달, 소리 없이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무들, 꽃들, 새들, 그리고 친구들, 부모님, 그리고 바람처럼 언제나 우리를 감싸고 계시는 하느님의 따뜻한 손길, 그리고 지금 여기 살아있음에!!! 진정으로 감사해야 할 것을 발견하는 그 순간 우리의 삶은 사랑과 기쁨으로 충만하여 더욱 행복해 질 것입니다.< 행복하세요,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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