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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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문의 표현이 예전과 달리 조금씩 변경되었습니다, 1980년도엔 죄의 고백을 다 마친 후, 다음과 같은 성찰기도문을 했었습니다. <이 밖에 나 성찰치 못한 죄와 남이 나로 인해 지은 죄 있을 터이니 신부는 도무지 저를 벌하고 사하소서.> 그 땐 조금은 생소하게 들렸지만 시간이 지난 요즘은 아주 의미있는 성찰문 이었다고 느낍니다. 사실 타인과 살다보면,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본의 아니게 말과 생각과 행동을 통해서 서로 죄짓게 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게 사람 사는 모습이라고 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은 억한 심정이 아니면 남을 죄짓게 혹 남을 불편하게 의도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봅니다. 다만 인간은 불완전하고 나약하기 때문에 우리 각자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이 나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짓게 하고, 예수님의 언급처럼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없을 수 없습니다.>(Lk17,1) 그런데 이 말씀에 덧붙여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표현은 너무 지나치시지 않나 생각이 들며 반감마저 듭니다. 아니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을 이해하신 듯,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고 말씀 해놓고서는 <남을 죄짓게 하면 불행하여라!>고 저주 아닌 저주를 퍼부으시니 저희더러 어쩌란 말씀일까요. 우리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자신의 여기 있음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이 죄짓게 하는 일이 불행하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하나요? 어찌하오리까?

 

오늘 복음의 구조는, 첫째 죄의 유혹에 대한 경고(17,1-3a), 둘째 잘못의 꾸짖음과 용서(17,3b-4), 그리고 믿음의 힘(17,5-6)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사실 저 역시도 다른 형제들과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지만, 예전 <양성지도자-양성자>,<장상-수하자>의 관계가 아닌 이젠 성숙한 수도자로 대등한 입장에서 살다보니, 새삼스럽게 신앙의 관점과 접근 태도가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느낄 때가 자주 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의 친밀도에 따라서 잘못의 꾸짖음과 용서의 폭도, 깊이도 달라지고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예전 어르신들이 자주 표현하신 말씀, <사는 것이 죄다.>는 말처럼 삶 자체가 사람에게 죄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사제 생활 초기에는 한사코 <아닙니다.>고 손 사레를 쳤습니다. 허나 이젠 기꺼이 인정하면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때론 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받아드립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세속, 마귀, 육신>이 죄의 근원이라고 가르친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창조하신 하느님의 뜻을 어기면서 다른 사람을 떠나 혼자 살아 갈 수 없는 게 인간의 운명이며 현실이라고 봅니다. 결국 사람이 어디서 살던지 죄의 유혹은 어디에나 있으나, 남을 죄짓게 하는 행동은 참으로 본인 스스로에게도 불행한 일이라고 느껴집니다. 자신이야 이미 깨닫고 나름대로 자유롭게 산다고 생각하면서 말하고 행동할지 모르지만 더불어 사는 사람의 작고 약한 믿음과 희망을 무너뜨리고 좌절시키는 행동은 철저하게 근절되어야 할 것으로 오늘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 작은 이들(=키가 작음이 아니라 미처 깨우치지 못하거나 믿음이 약한 사람)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 보다,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 던져지는 편이 낫다.>(17,2)고 예수님께서 빗대어 말씀하십니다. 동일한 가르침을 마태오에서는, <남을 죄짓게 하는 사람은 차라리 자신의 손과 발을 잘라 던져버리는 게, 눈을 빼 던져 버리는 게 불타는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Mt18,8~9)고 듣기 민망할 정도로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사실 <남이 나로 인해 지은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죄의 원인(?)이라고 여겨지는 신체의 일부인 손과 발 그리고 눈을 잘라버리고 빼낼 수 있는 용기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이를 스스로 보속으로 실행하겠다고 설사 고백자가 말하더라도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제들은 한사코 반대할 것이며,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한 것으로 봅니다. 이와 반대로 자신으로 하여금 죄짓게 한 형제의 손과 발을 그리고 눈을 어떻게 칼로 내리칠 수 있겠으며 눈을 빼낼 수 있겠습니까? 만일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아가면서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짓는데 있어서 내가 남의 원인이 되고, 남이 나의 원인이 된다면 서로의 잘못을 꾸짖고 용서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해야 할 믿음의 실천이고 사랑의 증거라고 봅니다. 타인의 잘못에 직면하여 화를 먼저 내고 칼로 응징하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속하지만 꾸짖음과 용서는 인간의 이성적인 믿음과 사랑의 행위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타인의 잘못을 꾸짖는 까닭은 타인을 단죄하고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사람을 그 사람이 되도록 <바로잡아 주기> 위한 것인데, 이는 곧 <용서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17,3)는 말씀은 상호 밀접한 관계입니다. 이러한 과정, 곧 꾸짖음과 용서는 죄나 잘못의 횟수와 상관없이 모든 경우에 해당합니다. 오늘 복음의 아름다운 점은 이러한 예수님의 강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미쳐 이를 깊이 있게 생각하며 살아오지 못했던, 즉 내가 남을 죄짓게 하는 원인이 되었고, 꾸짖음과 용서를 제대로 베풀지 못하고 살아 온 삶을 깨달은 제자들이 마침내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17,5)라고 스스로 스승이신 예수님께 고백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첫 제자들처럼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칭찬하고 격려해 주신 것과 똑 같이 우리에게도 칭찬과 격려를 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이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실존, 그로 인해 본의 아니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죄를 짓게 할 수 밖에 없는 나약함을 알면서도 늘 서로가 서로에게 열린 마음으로 타인의 잘못을 꾸짖고 용서하는 삶을 통해서 더욱 아름답고 거룩한 삶을 이루어 간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하고 요구되는 것은 지금 보다 더 나은 관계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면 족하고도 남습니다. 이 믿음은 바로 하느님의 선물이며, 이 믿음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서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이기에 그 시초에는 겨자씨 한 알만한 것이라도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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