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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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종의 의무에 관한 비유>(Lk17,7~10)를 들려주는데, 노예제도를 경험하지 못한 현대인들에게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종의 신분이 법적으로 인정되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오늘 비유는 쉽게 이해될 수 있고, 겸손에 관한 탁월한 가르침이라고 느껴집니다. 결국 복음에 대한 몰이해는 복음이 저술된 시대의 문화에 대한 몰이해에서 파생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복음의 행간을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문화에 대한 이해가 사실 전제되어야 합니다.

 

2,000년 전의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200년 전만 해도 이 땅에서도 종은 주인의 소유물이었으며, 주인의 물건과도 같이 사고팔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종은 오로지 주인을 위해서 살고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종이 하루 종일 <밭을 갈거나 양을 치고 난 후>(17,8),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도, 주인이 <먹고 마시는> 동안 시중을 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종이 이처럼 당연한 일을 했다고 해서 주인이 종에게 감사하고 고마워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종은 자신이 해야 할 바를 다 하고 나서, <저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17,10)고 고백해야 자신의 처지를 아는 종이며 슬기로운 종일 것입니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안다는 것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 자신이 해야 할 바를 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종은 종이 해야 할 일이 있고, 종이 있어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주인이 해야 할 일이 있고, 주인이 있어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현실은 우리가 아는 만큼 살지 못하고 오히려 이런 삶의 자세와 태도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을 바보 취급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 자신부터 알고 느끼고 있잖아요. 저는 바보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사는 사람이 부러울 때가 많은데 사실 바보는 정말 바보가 아니라 하느님 편에서 볼 때 가장 믿음직스러운 종일지 모릅니다. 왜냐고요. 바보는 바로 자신이 해야 할 바를 다하고서도 <무엇을 더 바라지 않고 다만 받은 것에 감사하면서 하느님께 보답하는 사람>이기에 그렇습니다.

 

이러한 태도와 자세는 종의 처지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만, 성서의 가르침은 단지 <주인-종>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하느님-인간>의 관계에서도 적용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을 자신의 삶의 가치로 실천하며 살았고, 그리고 자신의 묘비명에 이 말씀을 새기고 세상을 떠나신 분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 분은 바로 <묵주알>의 저자로 잘 알려진 나가이 다카시 박사입니다. 제가 사제 서품을 받았던 곳이기도 한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 폭탄으로 그는 사랑하는 아내는 물론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잃었으며 그 자신도 또한 백혈병과 피폭자로서 죽는 순간까지도 매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느님을 원망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느님께 감사하며 자신과 그 지역이 받는 고통의 의미를 해석하며 죽음 직전까지 신앙을 증거하고 평화를 위한 수많은 글을 남겼습니다. 그는 자신과 자신이 살았던 신앙의 도시 곧 순교의 도시인 나가사키가 겪어야 했던 모든 고통과 삶이 평화를 위한 희생 제물이었음을 깨닫고 참된 신앙의 증거와 삶을 통해 자신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느님의 종으로 충실히 사시다가 하느님께 돌아가신 이 시대의 욥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묘비에 새겨진 성경 말씀대로 자신이 살아온 모든 인생의 결론으로 <주님의 종으로서 저는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고 비문으로 선택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이 하루 나가이 박사의 고백처럼 주님께서 우리 각자가 놓여 진 삶의 자리에서 하늘나라를 위해 무슨 도구로 어떻게 쓰시든, 그저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저는 주님의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고 고백하며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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