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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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무더위가 살며시 우리 삶의 자리로 스며들어 왔네요. 마스크와 함께 여름의 무더위로 인해 숨 막힌다는 느낌은 저만의 느낌이 아니겠지요. 안미옥이란 시인은 <한 사람이 있는 정오>에서 <어항 속 물고기에게도 숨을 곳이 필요하다.>고 표현했지만, 일년 반 가까운 시간 동안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의 제한과 규제가 지속되면서 숨을 곳이 필요하기보다는, 너무 숨어 있다 보니 숨 막히고 지쳐가고 있지 않나요. 아니면 두려워하고 있지 않나요. 어찌했든 이로 인해 이곳저곳에 그녀가 묘사하듯 <작고 빛나는 흰 돌을 잃어버린 것 같은>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펜데믹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리는 두려움조차 두려워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어쩌면 시인의 표현처럼 <진심을 들킬까 봐 겁을 내면서 겁을 내는 것이 진심일까 걱정하면서> 말이지요. 시인은 말합니다. 이는 <구하지 않아서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저 역시 그럴 수 있겠다 싶긴 합니다. 비록 우리가 구할 수도 없고 원할 수도 없었던 상황 속에 놓여 살고 있다고 하여도 우리는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했는지 모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구나라고 속으로만 말할 뿐, 구하지 않다 보니, 오히려 어둠이, 겁이 우리 마음에 스멀스멀 밀려 들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제 <진짜 나의 마음을 갖게 될 때까지> 마음의 한편에 숨지 말고, 두려움이 없는 저 건너편으로 건너가도록 모두 일어서길 바랍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저절로 자라는 씨앗과 겨자씨>와 같다는 비유를 말씀하신 그날 저녁에, 호수 건너편으로 나아가면서 일어난 일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4, 35) 분명 늦은 저녁 시간이 되었는데, 더더욱 많은 군중을 남겨둔 채 예수님은 굳이 호수 건너편으로 건너가자고 제자들을 재촉하십니다. 무엇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토록 서둘러 길을 재촉하셨을까요? 이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미 시작되었기에, 아직 복음이 선포되지 않은 건너편으로 건너가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끼셨기에 그렇게 서두른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 종살이에서 젖과 꿀이 넘치는 복지로 나아갈 때도 저녁이었듯이 밤이 더 깊어지기 전에 서둘러 예수님은 <파스카: 건너감>을 재촉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또한 언제나 안주하지 말고 ‘저쪽 그곳으로’ 건너가야 합니다. 이미 하느님 나라를 위한 씨앗이 뿌려졌기에 어제의 시공간에 멈추고 안주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새로운 탈출이 요구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건너가자!>
 
이집트 탈출처럼 모든 해방과 구원에로의 여정엔 예상과 달리 많은 시련과 난관을 만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네 삶의 실제 상황이며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기에 복음은 거두절미하고 <호수 저쪽으로> 출발했다고 하지만, 건너기 시작과 함께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4, 37)고 적나라하게 상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타고 가는 배 안으로 물이 들어차는 것처럼,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크고 작은 공동체에도 위협과 시련이 밀어닥치기 마련입니다. 오히려 더 많은 시련을 겪을지 모릅니다.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으면 만사형통하리라는 인간적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을 통해 유혹에 넘어지거나 시험을 통해 신앙의 깊이가 깊어지는 때이기도 합니다. 우리처럼, 아니 예수님을 모신 채 떠난 제자들 또한 돌연히 밀어닥친 돌풍과 풍랑으로 물이 배에 차오르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혼란에 빠집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를 예수님은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곤하게 주무시고 계심이 겁에 질린 제자들과 무척이나 대조적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은 부러 방관하신 채 제자들 스스로 해결하도록 방치한 듯 침묵합니다. 예수님의 침묵, 하느님의 침묵은 단지 오늘 복음의 제자들만이 아니라 교회사를 통해 주님의 개입과 간섭이 필요한 상황을 겪었던 수많은 박해와 전쟁 가운데서도 침묵하셨습니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하지 않으십니까?>(4,38) 도대체 왜 예수님은 침묵만 하셨을까요? 

어쩌면 예수님의 침묵은 욥에게 폭풍 속에 말씀하신 것처럼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신>(38,8) 주님께서 <‘너의 도도한 파도는 여기에서 멈추어야 한다.’고 할 때에>(욥38,10) 멈출 것이기에 아버지 하느님의 때를 기다리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느님께서 활동하실 땐, 우리는 믿음으로 기다리고 견뎌내야 합니다. 때가 되면 예수님은 일어나시어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4,39)는 명령 한 마디로 바람이 멎게 하시고 호수를 아주 고요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침묵은 온전히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신뢰에서 편히 잠드신 게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께서 주무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자들이 맹목盲目적인 상태에 잠들어 있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제자들에게 영적으로 잠든 상태에서 깨어나서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믿음으로 세상에서 일어난 일을 바라보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하지 않으시고 방관하신 게 아니라 우리가 깨어나도록 기다려 주시고 환난과 시련 가운데서 함께 계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자라도록 참아주신 겁니다. <곤경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자, 역경에서 그들을 빼내 주셨네. 광풍을 순풍으로 가라앉으시니, 거친 파도 잠잠해졌네.>(시107,28~29)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4,40) 라고 질책하신 표현을 통해서 제자들의 믿음을 더 굳게 하시려는 의도였음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사실 제자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제자들과 우리의 문제는 결국 예수님께 대한 믿음의 부족 내지 없음에 있습니다. 분명 바다 한가운데서 밀어닥친 거센 돌풍과 높은 파도는 배에 타고 있는 제자들에게는 두렵고 겁나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질책에 내포된 뜻은 이런 자연적인 현상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예수님을 향한 신뢰 부족 곧 불신에서 기인한다고 판단하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실 때의 상황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기도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 시련과 환난의 때일수록 믿음의 정도가 확연히 드러나는 때이기도 합니다. 의식의 차원이 아닌 무의식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처신과 행동이 바로 가장 진솔한 마음의 표출입니다. 역설적으로 믿음의 정도가 확연히 드러나는 상황은 바로 그런 두렵고 혼란스러운 때입니다. 사실 두려워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뿐입니다. 그러기에 두려움조차도 두려워하는 그 마음이 가장 두려운 것입니다. 삶의 가장 진솔한 순간은 그런 상황에서 증명되고 입증되는 겁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히11,1)

사실 거센 돌풍과 풍랑 앞에서 어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거센 돌풍과 놓은 파도를 향해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고 꾸짖고 멈추게 할 수 있는 분은 오로지 예수님 한 분뿐이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그분께서 하시도록 우리는 그분께서 하실 때를 믿음과 신뢰로 기다리면 됩니다. 기다리면서 예수님처럼 고물에서든 어디에서든 베개를 베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편히 쉬면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2코5,17)는 사도 바오로의 격려처럼 우리는 새로운 <파스카:건너감>을 통과한 사람으로 <옛것은 지나갔고 새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2코5,17참조) 이제 우리 모두 시편 작가의 권고처럼 살아갑시다. <한다한 일들을 좇지도 아니하고, 내게 겨운 일들은 하지도 않나이다. 차라리 이 마음은 고스란히 가라앉아, 어미 품에 안겨 있는 어린이인 듯 내 영혼은 젖 떨어진 아기와 같나이다. 이스라엘아,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주님만 바라고 살아가라. 아멘.>(시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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