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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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지난 세월을 되돌아볼 때, 누구로 인해 그리고 언제 어떤 일로 가장 힘들었습니까? 저의 지난 삶을 되돌아볼 때, 가장 힘들었던 때는 1995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제가 존경하던 공동체 어른과 갈등으로 인해 가장 하고 싶었던 수련장 소임을 그만두게 되었고, 그로 인해 가장 순수하고 치열하며 가난하게 살고 있었던 척산리 수련소를 떠난 다음 상처받은 채 안식년을 떠나갈 때였습니다. 그 일이 있기 이태 전 어머님을 잃고 죄책감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저에게 이 일은 제 마음속 깊이 아프고 힘든 상처로 남았습니다. 모르는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보다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 모르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사랑했던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 훨씬 더 힘들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그리고 그 이후 또 다른 문제로 인해 같은 분한테서 여러 차례 겪으면서 깨달았죠. 사람을 너무 믿었던 제가 약했고 무지했었습니다. <사람을 믿기보다 주님께 피신함이 더 낫나이다.>(시118,8) 떠날 때 제 심정은 아픔 그 이상이었습니다. 

저의 떠남과 결은 다르지만, 오늘 복음(Jn6,6—68)에 보면 많은 사람이 예수님 곁을 떠나갔습니다. 사랑했기에 당신의 모든 것,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당신의 살과 피를 주시고, 그래서 당신을 먹고 마시면 참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가슴 저미게 가르쳤었는데, 눈이 멀어 보지 못하고, 귀가 막혀 듣지 못하는 이들이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빵을 먹었던 군중들이 떠나는 것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3년 동안 함께했던 제자들마저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떠나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안쓰럽게 제게 다가옵니다. 그때처럼 오늘도 수많은 사람이, 정작 예수님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6,54)고 말씀하시자 투덜거리며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6,60)라고 투덜거리던 몰이해와 불만의 소리는 오늘도 우리 안에서 다시 들려옵니다. 어제도 오늘도 떠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분의 눈가에 눈물이 고인 까닭은 <영은 생명을 주지만 육은 아무 쓸모가 없는데도>(6,63) 제자들이 떠나는 것을 보면서 제자들의 떠남은 은총으로도 사랑으로도 막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마저 떠나가는 것을 보고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6,62)라는 말씀으로 애달픈 당신의 속내를 쏟아내십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6,64참조)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사람이 되신 분이시지만 어쩔 수 없이 인간의 언어 범주 안에서, 언어의 한계 안에서 충분히 당신 자신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비유를 통해서 가르치셨습니다. 남은 것은 소리를 넘어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살아야 할 사람들의 결단입니다. 많은 사람뿐만 아니라 제자 중에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어렵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습니다. 가르침에 대한 거부는 불신(不信)으로 나타나며, 불신의 결과는 추종의 거부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떠나갔던 것입니다. 예수를 떠나감은 이젠 예수와 함께 할 필요가 없다는 결단의 행동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육적인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예수가 영이요 생명이심을 깨닫지 못한 채 그분 곁을 떠납니다. 예수님은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이는 곧 자기 자신만 생각하며 사는 육의 삶이 아니라 하느님을 중심으로 하는 영의 삶이 하느님의 생명을 준다는 뜻입니다. 영을 따라 사는 생명은 하느님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자기 자신을 내어주고 쏟아서 주변에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게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육 혹은 욕심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떠나간 자들은 육의 삶을 집착하는 사람들이며 하느님 나라 건설 대열에서 낙오된 자들입니다. 그렇게 많은 제자가 길을 바꾸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6.67) 이 물음은 단지 제자들만이 아닌 바로 우리에게도 선택하라는 말씀이십니다. 일상적인 지상 생활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임금을 찾아 떠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내주어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는 예수님을 계속 따를 것인지 두 갈래 길에서의 선택을 요구하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질문에 베드로가 열두 제자를 대표해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6,68~69) 베드로의 고백은 단지 그만의 고백이 아닌 교회의 고백 곧 우리의 고백입니다. 

오늘 제1독서 여호수아기에 의하면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끌고 간 여호수아가 죽음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 말합니다.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민족에게 하신 것을 다 보았다. 그러니 이제 너희는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여호23, 3; 24,15) 그러자 백성이 그에게 대답합니다.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주님을 버리는 일은 결코 우리에게 없을 것입니다.>(24, 16) 자신들을 약속의 땅으로 이끄신 하느님께 대한 변치 않는 믿음을 다짐했던 여호수아와 그의 백성들처럼, 베드로와 사도들은 생명의 하느님의 이끄심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시는 예수님을 향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고백합니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기 마련입니다. 베드로 사도를 비롯하여, 사도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전적으로 받아들이겠다고 그들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믿기 위해서 이해하는 것이지,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 사도는 또한 예수님을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에 의해 거룩하게 되어 지상으로 파견된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6,68)라는 반어법 표현을 통해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소련의 스탈린 시대에 콤팰트라는 이름을 가진 유다인 의사가 있었습니다. 콤팰트는 스탈린에 반대하는 의견을 냈다가 시베리아 강제수용소에 수감되고 말았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천주교 신자를 만나 예수님을 알게 됐는데, 주님 말씀에 따라 최선을 다하고 부정과는 타협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 콤팰트가 수용소 규율을 어기게 됐습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수용소에서 젊은 남자 한 사람이 암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사상이 나쁘다는 이유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수술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콤팰트는 의사로서 큰 책임을 느껴 남모르게 수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의사로서 양심에 걸리는 일을 더 이상 방관하고 있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수용소 법을 어기고 금지된 수술을 한다는 것은 바로 사형 선고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콤팰트는 수술을 감행했고 그로 인해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사형이 행해지기 전날 밤에 콤팰트는 수술을 해준 젊은 남자를 찾아갑니다. 콤팰트는 그에게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며, 자기가 왜 수술을 했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그 옆에 있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이 젊은이를 수술해준 죄로 당신이 죽게 됐는데 후회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아주 유명한 대답이 나오지요. <그리스도 안에서의 결심은 결코 후회가 없습니다.> 다음 날 콤팰트는 처형장으로 담담히 걸어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콤팰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하느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때 수술을 받고 살아난 젊은이가 바로 노벨상 수상 작가인 알렉산더 솔제니친입니다.

예수 추종을 위한 결단은 아름다운 미사여구가 아니라 구체적인 신앙 행위로 드러나야 합니다. 즉 <육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은 생명을 준다>(6,63)는 말씀을 믿고 이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추종의 결단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번 매 순간 일어나는 사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 사도는 분명 오늘 훌륭한 고백과 예수 추종을 결단하였지만, 한순간에 그것도 무려 세 번씩이나 스승을 배반하게 되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금기의 선을 넘어선 사람만이 왜 금기가 필요한지 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주님은 심지어 죄까지도 허용하신 분이십니다. 어쩌면 저는 사람에게서 떠났지, 주님에게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는 저의 죄로 말미암아 숱하게 넘어졌고 지금도 자주 넘어지지만, 주님을 떠나서는 내가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에 전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셨던 것처럼 저 또한 이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순간과 날들을 살아가겠습니다. 이젠 어리석지 않을 나이가 되었기에, 사람을 믿기보다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주님만이 나의 위로이며 성채이십니다. <주님, 당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당신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복음환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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