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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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Lectio Divina를 실천해 왔습니다. 다만 이를 좀 더 깊이 자각하지 못해 왔을 뿐입니다. 이 Lectio Divina 기도의 방법은 성찬례(=감사의 제사)에 적용함으로써 하느님과의 합일의 체험을 매일 연장할 수 있습니다. 감사의 제사는 그리스도인 개인과 공동체 삶의 중심입니다. 감사의 제사 거행 안에서 성부께서는 우리를 당신 성자의 주위로 불러 모으시고, 우리의 마음에 당신 성령을 보내십니다. 그리스도는 각자의 개인적 희생과 모든 인류를 위한 당신 자신의 희생과 결합하고 일치시키십니다. 우리는 말씀의 식탁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성찬의 식탁에서 그 말씀에 사랑으로 응답하고 참여합니다.

 

전례는 삶과 영성이 결합한 시간이자 자리입니다. 전례는 이론과 실천을 묶어 주는 교량과 같습니다. 우리네 삶을 전례로 이끌고, 전례를 통해서 다시금 삶으로 되돌아갑니다. (=물러남과 되돌아감) 감사의 제사는 4가지 생생한 상징 의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말씀, 공동체 기도와 신경, 영성체> 이 4가지 상징들과 과정은 Lectio Divina의 4단계와 조응(照應)하며 교차 됩니다. 4단계를 통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체험하는 것은, 각 단계의 초월적 차원이 구체적이고 실재적으로 실현되는 것입니다. 감사의 제사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사건의 친교와 합일을 위한 다른 경로의 표현입니다.

 

(1)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

(2) 우리는 강론을 통하여 구체적 인간 상황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우리가 감사의 제사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우리가 성체를 나누어 먹을 때 그리스도와 합일되는 것처럼, 성령의 현존 안에서도 동일하게 되는 것이다.>고 강조하였습니다.

(3) 우리는 통상적인 신자 공동체의 기도와 신앙고백 안에서 간구-기원-간청-감사의 기도를 바친다.

(4) 우리는 영성체를 통해 생생한 생명의 빵인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모심으로 천상 잔치에 참여한다.

 

이처럼 우리는 성찬례 안에서, 삶과 영성이, 이론과 실천이 분리되지 않은 생생한 생활화된 기도 생활을 통합할 수 있습니다. 성찬례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교 기도의 완성이며 결론입니다. 성찬례는 <기도 중의 기도>, <가장 완전한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 만찬 때, 당신의 사명 전부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요한16, 28) 그런데 예수께서는 혼자 성부께로 돌아가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아닙니다. 당신을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도 당신과 함께 성부께로 이끌어 가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 구원 움직임, 구원 경륜을 실현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성체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체성사는 성부께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곧 성체는 우리를 성령 안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께 귀환시키는 성사이며, 구원사업의 모든 요소를 다 포함하고 완전히 실현하는 모든 은총의 원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성체 안에 우리를 일치시키고 그리하여 우리를 성부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기도 생활을 통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지, 하느님을 통해 기도를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쉬지 않고 기도를 암송하느라 의식상태가 분열되어서는 안 되며, 기도가 일상생활에 주의를 기울일 수 없게 하거나 생활의 의무를 외면하게 해서는 더욱 안 됩니다. 오히려 삶의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항상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살기를 배우며 기도 생활을 지속해야 합니다. 기도는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되며,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끌기 위한, 하느님과 하나가 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기도 생활을 향한 우리에게 사도 바오로의 <늘 기도하라, 끊임없이 기도하라, 쉼 없이 기도하라!>는 표현은 가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쉼 없는 기도란 하나의 기술이 아닙니다. 사도 바오로가 쉼 없는 기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바로 이해하려면, 다른 두 차원의 간곡한 권유와 더불어 살펴봐야 합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열린 마음으로 기쁘게 모든 사람을 환대하고, 모든 사물을 받아들여라. 역경 가운데서도 즐거움으로 함께 사랑을 노래하라.)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기도를 잊지 말라. 하느님의 현존을 향해 열려 있으라. 어려움이 생기거나 또는 모든 일이 잘 될 때도 기도를 멈추지 말라. 주의를 집중하고 분심을 피하라.)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관대한 마음으로 감사할 주 알라. 역경과 좌절을 겪을 때에도 무언가 긍정적인 것을 찾으라. 기도와 성찬을 통하여 감사를 드림으로써 분열을 치유하고 일치를 드러내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테1서 5, 16~18)

 

사도 바오로는 이처럼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라고 권고하십니다. 감사는 곧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 상태입니다. 기도는 감사입니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는 것은 곧 기도입니다. 감사는 느낌으로 하는 감사와 의지로 하는 감사가 있겠습니다. 즉 쾌청한 날씨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물론 이마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우리가 예상하지 않은 일,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땐, 오직 의지로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곧 기도입니다. 이런 감사는 느낌이 아니라 신앙의 힘으로만 감사할 수 있습니다. 고통 가운데 사람들은 누가 기도하라고 하지 않아도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토록 기도함에도 응답받지 못할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경우에도 이렇게 감사의 기도를 바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 던져 주심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회입니다. 일이 계획대로 안 되게 틀어 주심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이 반성 될 수 있습니다. 아들 딸이 걱정거리가 되게 하시고 남편이 미워질 때도 있게 하시고 부모와 동기가 짐으로 느껴질 때도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인간된 보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데 힘겨웁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눈물로써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허탈하고 허무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영원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니까요. 불의와 허위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하느님의 의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주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어려운 그 순간이든, 그 시간이 지난 다음이든 신앙의 힘으로 감사할 수 있다면 그게 은총이지요.

 

또한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새로운 감동으로 감사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기도가 이를 가능하게 합니다. 너무 가까이 있기에 오히려 소홀하기 쉬운 주변의 사물, 사람들을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무라 가즈키오는 <당연한 일>이란 시에서 이렇게 사람들의 무심함을 묘사합니다. <세끼를 먹는다. 밤이 되면 편히 잠들 수 있고 그래서 아침이 오고 공기를 실컷 들이마실 수 있고 웃다가 울다가 고함치다가 뛰어다니다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두가 당연한 일 그렇게 멋진 걸 아무도 기뻐할 줄 모른다. 고마움을 아는 이는 그것을 잃어버린 사람들뿐 왜 그러지 당연한 일을 가지고...> 감사하는 마음은 이처럼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또한 항상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기뻐한다는 것은 기도입니다. <아끼던 것을 팔고 버리는 아픔이 있지만 찾고자 하는 것을 찾았다는 기쁨이 곧 기도의 선물입니다. > 한마디로 크리스챤 생활은 기쁨의 생활입니다. 기쁨 중에 살아가는 것이 바로 크리스챤 생활입니다.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사랑 안에 머문 결과가 곧 기쁨입니다. 기도의 열매가 곧 기쁨입니다. 사랑의 열매가 기쁨입니다. 외적인 기쁨이 아닙니다. 존재적인 기쁨입니다.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기도 생활은 기쁨이 충만한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고 기쁨이 충만할 때 기도 생활에 더욱 충실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환난 가운데 기뻐하였습니다. 그가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기쁨은 좋은 성격의 결실도 아니고 자연적인 자질이나 노력으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질그릇 같은 우리 속에 이 보화를 담아주셨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능력이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삶을 통해 보여 주었습니다. 기도하는 인간은 이런 면이 자연스럽지요.

 

기쁨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것이며 전염됩니다. 파급됩니다. 가족을 통해서 주어지는 작은 기쁨들을 발견하고 가꾸어 나가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해인 수녀의 <기쁨이란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오래 앓고 난 지금의 나는 삶이 가져오는 무거운 것 슬픈 것 나를 힘겹게 하는 모욕과 오해 가운데서도 기쁨을 발견하여 보석처럼 갈고 닦는 지혜를 순간마다 새롭게 배운다.> 기도하는 사람만이 기쁨을 새롭게 배우고 닦는 여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사실 기쁨으로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기도의 삶을 살다 보면 우울증이나 스트레스에서도 자유로워집니다. 왜냐하면 우울증은 정신을 흐리고 혼란스럽게 하는데, 분심에 대처하는 방법처럼 의식하지 않고 기도를 꾸준히 하다 보면 저절로 사라지기도 합니다. 마치 안개 속을 항해하는 배가 자신의 힘으로 햇빛을 나오게 할 수는 없지만, 하느님께서 도우시면 햇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울한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은 결코 우울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기쁨은 많은 것을 소유하는 데에서 오는 기쁨이 아니라 어떤 분을, 우리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을 만난 데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그 기쁨은 어려운 순간에도, 삶의 길이 극복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와 장애물을 만날 때에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데에서 나옵니다.

 

 

사도 바오로가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제 견해로는, 기도 생활의 또 다른 결실, 열매는 평화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은 우리 마음 안에 평화를 선물로 주십니다. 평화는 기도의 또 다른 수확물입니다. 평화는 늘 어려움을 통해서, 십자가를 통해서 주어집니다. 평화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새로움입니다. 낡은 것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으로 충만한 상태가 평화입니다. 평화의 반대를 전쟁으로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기심으로 꽉 찬 마음이 이타심으로 바뀔 때, 세상은 온통 새롭게 변합니다. 평화가 선물로 뜻밖에 주어집니다. 그러기에 ‘저 부활’의 가장 큰 선물은 평화였습니다. 평화란 부활처럼 버리고 비운 결실로 얻어지는 성령의 열매이며 결실입니다. 너희의 모든 근심 걱정을 나에게 맡겨라 그러면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선물로 주겠다고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이처럼 신앙생활은 기도 생활과 분리할 수 없습니다. 기도 생활이나 신앙생활도 살면서, 살아가면서 체험하는 삶입니다. 자꾸 사람들은 목마를 때 물의 효능이 어떻고 어떻게 마셔야 하며 어떤 물을 마셔야 좋은가라고 따지는데, 목마를 땐 그냥 물을 마시면 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시면 되듯이, 매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고 늘 기도하면 됩니다. 마시면서 와 맛있다 하면 되는 것이지요. 온몸과 마음과 정신과 영혼을 다해 감사하면, 기뻐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런 기회에, 묵주기도에 대해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묵주기도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지극히 단순한 기도이지만 이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을 가장 심오한 관상의 신비로 이끌어 줍니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나 어느 때든지 할 수 있는 단순성입니다. 로사리오 기도는 공동체와 함께 공식적으로 바칠 수 있으며, 개인적으로 사사롭게 바칠 수 있습니다. 저는 예전처럼 지금도 외출시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는데, 그때마다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요즘엔 저녁 식사 후 산책과 운동을 겸해서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사실 처음 수도원 입회했을 때, 외국 신부님들과 살면서,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지 않았습니다. 구교우 집안에서 보고 들으면서 묵주기도롤 드려오지 않은데다 함께 사시는 분들에게서 그런 모습이나 가르침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묵주기도를 매일 하지 않았습니다. 메쥬고리아 순례 후 묵주기도는 제게 일상화되었습니다. 아무튼 묵주기도는 언제 어디서나 쉽게 바칠 수 있는 기도입니다. 묵주기도 시간은 결코, 짧지도 그렇다고 해서 긴 시간도 아닙니다. 묵주기도를 바치려고 시간을 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정말이지 로사리오는 저에게는 방패이며 무기처럼 늘 손에 들려 있고 어디서든지 기도할 수 있어서 매우 좋습니다. 저의 경험에 의하면 지하철 안에서 묵주기도를 바칠 때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어느 자매가 도대체 몇 단짜리 묵주인지는 모르겠지만 지하철 안을 왕래하면서 묵주기도를 바치는데, 묵주 알이 전동차 실내 바닥에 닿아 끌면서 기도하는 모습은 여간 보기 좋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묵주기도의 특장特長은 어떤 심오한 지식이나 특별한 훈련이 필요하지 않고 쉽게 배울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다는 단순성입니다. 물론 어느 신자 분은 ‘50번씩이나 성모송을 반복해 읊조리는 것은 정말 싫다’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말은 사실 유혹입니다. 성모송은 계속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새롭게 하는 것이며, 새로운 은총이고 선물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50번씩이나 되는 성모송을 입으로는 계속 반복하고 있는데 마음은 그렇지 않을 경우일지라도 부담을 갖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성령에 의해 예수께 인도하시고 이끌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태양조차도 매일 똑같은 빛과 열을 발산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에너지를 발산합니다. 나무 또한 똑같은 나뭇잎과 꽃과 열매를 만들어 내지 않고 항상 새로운 것들을 생산해 냅니다. 샘물은 항상 새롭고 신선한 물을 공급하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이렇듯 기도는 반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과 사랑으로 ‘성모송’을 되풀이할 때, 마음의 단순성과 침잠을 통해 주님께서 당신의 신비에로 이끌어 주십니다. 핵심적인 열쇠는 그분을 내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주님께서 기도하는 나를 기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저로 하여금 당신의 기억 속에서 당신 자신의 신비를 나누게 해주십니다.

 

성모송은 복음의 기도입니다. 성모송의 첫 부분,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시도다.>라는 기도문은 루카 복음 1장의 천사 가브리엘의 인사말과 엘리사벳의 경하하는 인사말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는 곧 천사 가브리엘을 통하여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구원의 기쁜 소식을 알려줌과 경축의 인사이며, 이어서 엘리사벳을 통해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인자하심과 자비하심에 대한 인간의 화답입니다. 신앙고백입니다. 이보다 더 큰 은총의 기쁜 소식이 있겠습니까? 이 은총의 선물은 단지 어머니 마리아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성모송을 바치면서 교회는 늘 새롭게 하느님의 인류와 함께하심과 그 베푸심을 기억하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협력자이신 어머니 마리아께 중재를 부탁하며, 당신처럼 우리 역시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느님을 위해서 일할 수 있도록 간구를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네. 주님 지금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

또한 기도할 줄 모르는 당신 제자들이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시자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세상에서 살아야 할 삶과 진리는 너무도 가까이 있고 단순합니다. <신자 생활은 주님의 기도를 살고 실현하는데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모든 신자 생활의 기본이며 바탕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전반부의 3가지 기원, 즉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나라 그리고 아버지의 뜻과 후반부의 4가지 청원, 즉 양식, 용서, 유혹 그리고 악에 관한 청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전반부와 후반부의 상호 대칭 관계를 통해 그 뜻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주님의 기도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 악에서 구하소서.> 아버지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는 악에서 구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악에서 구원되는 것이 곧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빛나게 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거룩하심은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가 됨으로써 빛나게 됩니다. “하느님은 영광은 살아 있는 사람 곧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세상적인 것으로부터 유혹을 받기 마련입니다. 그때가 바로 하느님의 나라가 필요한 때입니다. 내 삶의 관심과 중심을 아버지의 나라, 하느님 나라의 가치에 둘 수 있을 때 우리는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에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그 용서를 바탕으로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녀들이 서로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형제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버지 하느님의 뜻이며, 이를 살아갈 때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아버지의 통치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아버지의 자녀답게 용서하고 세상에서 하느님 뜻을 살아갈 때, 천상적 삶과 지상적 삶이 하나로 묶여지며 이를 위해 하느님께서는 육신적인 양식과 영적 음식을 베푸어 주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지 말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들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알고 계시며 베푸어 주신다.> 그렇게 이루어졌음을 우리는 믿고 아멘! 하는 것입니다.

 

잘 알고 계시지만, 다시금 <우루과이 한 작은 성당의 벽에 있는 기도문>을 읽으면서 묵상해 봅시다. <하늘에 계신> 하지 말아라! 세상 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 하지 말아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 하지 말아라! 아들 딸로서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하지 말아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 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하지 말아라! 물질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지 말아라!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하지 말아라! 가난한 이들을 본체만체하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하지 말아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하지 말아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아멘> 하지 말아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저는 성모 신심이 부족한 사제이지만, 참으로 세상의 많은 성지중에서 성모 성지 여러 곳을 여러 차례 순례했고, 그때마다 성모님의 동일한 메시지를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즉, 성모님께서는 모든 당신의 자녀들에게 묵주의 기도를 바치도록 하시지만, 특별히 사제들에게 당부하십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들인 사제들에게 로사리오 기도를 믿고 마음을 다해 로사리오 기도를 드리라고 말하여라!> 이 메시지를 묵주기도에만 국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진정한 사도적 삶은 한 사제가 기도 안에서 예수님과 성모님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 시작한다고 믿습니다. 한 사제의 입에서 <나는 도저히 기도할 시간이 없고 나는 너무나 많은 업무에 찌들어 생활한다.> 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 더 불행한 말이 또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세상은, 교회는 병들어 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사제는 기도 없이 가지고 있는 시간을 거룩하게 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은 기도이심을 깨닫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가르치는 스승이 되기 위해서 사제는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러기에 한 사제가 <나는 기도를 가르치며 기도를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표현은 없습니다. 광주 일곡동 수도원에서 <매주 토요 100단 묵주기도회>가 2015년부터 시작되어 계속 진행되어 오다가 코로나로 인해, 현재는 방역을 준수하면서 부득불 20단으로 축소해서 하고 있지만, 정상적인 신심 활동이 허락된다면 다시금 100단 기도회를 지속하려고 하지만 머지않아서 광주 공동체를 떠나야 하기에 어떻게 될지 주님의 섭리에 맡길 뿐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사제와 수도자들을 위해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스승이신 예수님께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듯이 여러분도 기도를 배우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기도만이 자신과 가정 그리고 교회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의 은총임을 감사합시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저희에게 아래 기도문을 가르쳐 준 박도세 신부님을 기억하면서... 강의를 마칩니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한다면, 교회는 반짝반짝 빛날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처럼 진실하다면 교회는 커질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처럼 온유하다면 교회는 매력적이 될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처럼 기도한다면 교회는 강해질 것입니다.

나는 바로 교회이고, 교회는 바로 나인 까닭입니다. 아멘.

 

 

**** 본디 기도학교 강의는 8번으로 끝나려고 했지만, 휴가를 다녀와서 9월 16일에 <루카복음에 나오는 기도>를 정리해서 보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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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기도학교 강의 1: 입문과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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