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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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금년 크리스마스는 코로나로 인해 예전과 전혀 다른 분위기입니다. 예전엔 지나치게 화려한 조명이 하느님의 겸손함이라는 신비를 가리고 있는 듯싶어서 조금은 쓸쓸한 느낌도 들었지만, 금년 대림 시기는 코로나로 인해 거리두기와 사적 모임 제한 등으로 한산한 길거리와 텅빈 식당이며 카페 풍경이 오히려 낯설기만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성탄의 의미가 무엇인지 재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때 김종삼 시인이 <북치는 소년>이라는 시에서 표현한 ‘내용 없는 크리스마스’가 아닌 ‘거룩하고 의미로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리라 생각해 봅니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희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 양(羊)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오늘 복음의 핵심은 <말씀은 하느님이시라는 것, 모든 것이 말씀에서 생겨났다는 것, 말씀은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고,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는 것>(요1,1-18참조)입니다. 저는 영세 후 2년 만에 수도회에 입회한 관계로 본당 생활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맨 처음 수도원을 떠나 제주교구 표선 본당 본당신부로 파견되었을 때(1997년), 제가 붙들고 떠난 말씀이 바로 오늘 저희가 들은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1,14)이었으며, 이후 베트남으로 선교를 떠날 때도 저는 이 말씀을 붙들고 떠나갔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2021년 안성요양병원으로 또다시 이 말씀을 붙잡고 내려왔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결국 생활화된 신앙을 의미하며, 육화된 신앙생활을 뜻합니다. 신앙생활은 빈말이 아니라 삶으로 육화되고 실현되어야 한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본당 사목 생활, 베트남에서 선교활동 그리고 노인병원에서 원목활동은 어쩌면 제 믿음을 실천하는 장소이자 기회라고 봅니다. 이 세 장소에서, 제가 만나 세상은 한마디로 ‘가난’이라는 관점에서 유사합니다. 하느님은 세상과 인간을 사랑하시어 사람이 되신 예수님을 통해 가난한 존재가 되셨습니다. 그분의 가난은 세상은 물론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의 표지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을 믿게 할 어떤 도리, 방도가 달리 없으셨기에 가난한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경험적으로 사랑이란 간곡하고 절실한 욕구들이 많이 있기 마련이지만, 말만으로 사랑의 그 욕구들을, 그 바람들을 채울 길이 없습니다. 

부모와 그 자녀들과의 관계처럼, 사랑받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닮기 마련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닮아져야 하는 법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상대방이 자신이나 자신의 사랑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으며, 사랑해 주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지나쳐 갈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받는 사람과 같아져야 하고 그 사람의 아픔이나 어려움을 함께 나눌 결심과 실행 의지를 갖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길이 없고 방법이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사랑한다는 것은 힘든 것입니다. 아내나 남편을, 자식이나 부모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그 사랑을 확신할 수 있도록 실행하지 않거나 표현하지 않으면, 이때 사랑한다는 말은 공허한 외침이나 빈말과 다른 것이 아닙니다. 차라리 침묵하는 게 더 낫겠지요. 사실 저 역시 사제로 살아오면서 사랑이란 말을 자주 빈번하게 사용하며 살고 있지만, 세상에 너무 흔한 말이 바로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실천이 없는 말은 죽은 말이며, 육화되지 않는 말은 요란한 빈 소리이며 곧 생명이 없는 말입니다. 빛이 없는 말입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실천하지 못한 사람은 실패한 사람이기에 저 역시도 사랑에 실패한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실 때 그분은 진심으로 사랑에 몰입하십니다. 그렇게 사람을 사랑하셨기에, 사람을 사랑하시려고 하느님이신 예수님은 가장 가난하게 태어나시고 가난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가난은 하느님의 편에서 보면 사람에 대한 사랑의 가장 극단적인 표현입니다. 여기에 하느님의 가난과 인간의 가난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하느님의 가난은 자유롭게 선택하신 가난이지만, 인간의 가난은 어쩔 수 없는 조건, 즉 인간의 실존이자 현실 조건입니다. 인간은 자기 가난에서 스스로 헤어날 길이 없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가난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늘 물질적 가난만을 생각합니다. 먹을 것이 없거나 집이 없는 사람도 분명 가난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가난의 전부가 아니라고 봅니다. 인간에게는 그보다 심한 가난, 그보다 두려운 결핍, 그보다 더 뼈아픈 가난이 있습니다. <노인과 바다> 라는 소설을 쓴 미국의 작가 헤밍웨이는 부유했으며, 의식주는 풍요롭고 풍부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아프리카까지 가서 동물 사냥을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그는 물질적으로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그가 사냥을 하던 총으로 자신의 입에다 방아쇠를 당긴 것은 처음으로 자기에게 닥아 온, 자신을 엄습해온 가난, 즉 도저히 감당할 것 같지 않은 늙음이라는 가난에서 도망치고 싶었기 때문이었지요. 늙음이란 가난, 병듦이란 가난, 사랑하지 못한 가난, 용서하지 못한 가난, 낮아지지 못한 가난,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생각의 가난, 남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마음의 가난 등 ... 이처럼 세상에는 여러 다른 가난이 있습니다. 

사람은 빵만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부족합니다. 미워할 때 사랑이 부족합니다. 용서하지 못할 때 평화가 부족합니다. 거짓을 살 때 참이 부족합니다. 아플 때 건강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죽음은 인간 가난의 절정입니다. 생명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가난,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우리는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가난을 함께 하기 위해서 바로 이 가난이라는 거친 샛길로 하느님께서 인간을 만나러 오셨고 다시 오신 것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시어 인간의 가난 곁에 와 계십니다. 아무런 방어도, 아무런 꾸밈도, 아무런 힘도 없는 아기의 모습으로 와 계십니다. 인간의 가난을 함께 짊어지기 위해서 가난한 존재가 되셨고, 그 가난의 한 가운데 사시면서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짓눌린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키려고>(루4,19참조)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육화의 삶은 바로 이 빛에서, 이 진리에서 그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작고 연약한 생명, 갓난아기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무시받는 이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그리고 그들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느님은 그런 예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그분 안에 은총과 진리를 봅니다. 그분의 은총과 진리의 삶은 사람들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덜어주고, 죄를 용서하고, 사람들을 고치고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하느님의 은총과 진리로 충만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가진 자들, 교만한 자들, 높은 자들의 어둠은 그분이 은총이고 진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시인 윌콕스는 세상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눕니다. 그 기준이 놀랍습니다. 아예 이런 사람 저런 사람 편 가르는 것을 거부하는 듯합니다. 누가 누구더러 죄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그저 사람일 뿐입니다. 다만 서로 필요할 때 기대고 받쳐 줄 수밖에요.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오늘날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지요. 부자와 빈자는 아니에요. 한 사람의 재산을 평가하려면 그의 양심과 건강 상태를 먼저 알아야 하니까요. 겸손한 사람과 거만한 사람도 아니에요. 짧은 인생에서 잘난 척하며 사는 이는 사람으로 칠 수 없잖아요.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도 아니지요. 유수와 같은 세월 누구나 웃을 때도, 눈물 흘릴 때도 있으니까요.  아니죠. 내가 말하는 이 세상 사람의 두 부류는 짐 들어주는 자와 짐 지어주는 자랍니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겹게 가는 사람의 짐을 들어주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남에게 당신 몫의 짐까지 올려놓고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는 사람인가요?> 

김 종삼시인이 노래한 <성탄의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인간의 가난을 몸소 함께 나누기 위해서 그리고 인생의 무거운 짐진 자들을 도와주시려 태어나신 예수님처럼 우리 역시 은총과 진리로 충만한 삶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을, 진리의 말씀을, 사랑의 은총을 실천할 것을 결심하며 주님의 성탄을 축하합시다. 은총과 진리로 다시 태어남을 기뻐하면서 오늘 성탄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도록 합시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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