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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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베트남에서 살 때, 제 양성자 여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른 저녁 다른 형제들과 함께 닥락으로 출발해서 다음 날 새벽 4:30분에 있었던 혼인미사에 참석하고, 다시 늦은 시간 그곳에서 출발하여 그 뒷날 아침 호치민으로 돌아왔었습니다. 베트남에서 처음 참석한 혼인미사였는데, 특이한 점은 함께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갔었지만, 장례나 혼인미사는 오직 본당신부 혼자 집전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오고 가는 버스 안에서 요한복음 카나의 혼인 잔치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묵상했었습니다. 

결혼이란 신랑과 신부 별개의 인격체가 만나 함께 사랑의 모험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잖아요.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도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카나의 혼인 잔치를 통해서 세상에 드러내려는 게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흘째 되는 날>에 열린 카나의 혼인 잔치는, 바로 죽음을 통한 생명이 되살아난 날, 부활의 새날이 시작되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는 부활의 새로운 사랑과 생명의 다른 상징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잔치입니다. 이 새로운 사랑의 잔치가 가져다준 기쁨과 환희의 순간에 우리 모두 초대받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 바이런이 옥스퍼드 대학에 다닐 때, <물이 포도주로 변한 카나의 기적에 관한 영성적 의미에 대해 논술하라>는 종교학 시험문제가 주어졌다고 합니다. 바이런은 시험 두 시간 동안 내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답답해진 시험관이 답안작성을 종용하자 마침내 쓴 한 줄짜리 답안지가 바로 다음 문장입니다. <물이 그 주인을 알아보고 얼굴을 붉혔다.> 이 시를 읽다 보면, 물동이에 조용히 담겨 있던 물이 갑자기 자기를 쳐다보는 예수님을 보고 “어머, 깜짝이야!” 하고 놀라는 모습이 상상됩니다. 이보다 더 절절하고 더 아름다운 표현이 어디 있겠습니까? 기다렸던 주인을 알아보고 기쁨에 넘친 얼굴과 마음을 그려 놓은 듯 합니다. 

또한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열린 날은 카나 출신인 나타나엘에게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1,51)라고 말씀하신 지 사흘째 되는 날이고, 바로 이날 혼인 잔치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초대받으신 것입니다. 눈에 띄는 표현은 예수님의 어머니는 <거기에 계셨다.>(요2,1)고 기록된 것과는 달리, 예수님은 새로운 삶의 시작, 사랑의 출발을 상징하는 혼인 잔치에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2,2)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초대받다’는 말은 그리스어로 <부르심을 받다, 소명을 받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이 혼인 잔치에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옛 질서가 아닌 새로운 질서가 시작되는 혼인 잔치에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초대받은 분이 거기 있는 모두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카나의 혼인 잔치는 세상적인 혼인 잔치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 더 큰 사랑의 결합과 출발 곧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영적 혼인을 표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언급한 것처럼 지금껏 <소박맞은 여인>이며 < 버림받은 여인>(이62,4참조)처럼 살아 온 우리네 인간 존재가 우리를 지으신 하느님과 혼인하려고 초대받고 있으며, <혼인한 여인> 신부로써 이제 우리는 하느님과 결혼을 통해 한 몸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이제 우리는 하느님과 새로운 사랑의 관계를 맺고 새로운 사랑의 질서 안에서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혼인 잔치에서 술은 잔치를 잔치답게 하는 특별한 음료이지요. 특별히 서양에서 포도주는 삶의 기쁨과 사랑의 행복을 고취鼓吹시키는 음료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말은 가장 기쁨과 환희로 넘쳐야 할 혼인 잔치에 바로 사랑이 떨어진 것과 같은 것입니다.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사랑의 소멸과 부재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것>은 더 이상 옛 질서는 사랑의 환희와 영감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옛 혼인 관계는 더 이상 무의한 것이며 파경을 맞은 것입니다. 새로운 사랑의 관계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인간적 사랑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더 깊은 사랑의 차원이 필요한지 모릅니다. 성모님은 바로 이 사랑의 없음, 텅 빔을 꿰뚫어 보셨으며 이를 채워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래서 텅 빈 항아리는 오직 당신 아드님만이 채워주실 수 있다고 확신했기에 주님께 청원하는 것입니다. <포도주가 없구나!!! >(2,3) 그렇습니다. 우리네 존재의 무의미함과 텅빈 사랑의 순간에 오직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예수님만이 비워진 항아리에 새로운 사랑을 기쁨과 영감을 채워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대답은 정말 뜻밖입니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2,4) 주님의 대답 속에는 부모와의 관계를 부정하고 단절하는 비인격적 의미가 담겨있는 듯 보입니다. 어떻게 어머니에게 여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주님의 대답은 혈육의 관계를 뛰어넘는 영적인 새로운 가족 관계를 향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랑의 질서 안에서 <어머니요 형제요 자매가 되는 관계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이해할 수 없는 주님의 이런 말씀을 항상 믿음 안에서 받아들입니다. 성모님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성모님은 인간적 이해의 지평을 넘어서는 주님 뜻을 늘 마음속에 묻고 감싸 안으십니다. 그래서 모든 이의 어머니가 되실 수 있던 것입니다. 그랬기에 성모님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2,5)고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며 사랑입니다. 성모님의 믿음과 사랑이 예수님께서 이제 하시려는 일을 가능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물독에 물을 채워라.>(2,7)는 대답은 인간적인 사고를 한 차원 넘어서 그 사랑의 근원이 어디에서 시작하는지를 보여 주려는 순간입니다. 어떤 좋은 물도 돌로 된 물독이라는 제한된 틀에 고정돼 있으면 결국 썩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물을 그저 새 물로 바꾸신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성찬례를 통해서 포도주가 주님의 거룩한 성혈로 변화되듯이 말입니다. 물이 변화되었습니다. 물은 본디 인간 본성을 그대로 보여 주는 재료입니다. 즉 변화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인간 본성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수거나 없애버림으로써가 아니라, 오히려 가득 채운 새로운 사랑의 질서에서 나오는 변화시키는 힘과 만나게 함으로써 변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거짓된 자아는 참 자아로, 이기적인 사랑은 이타적인 사랑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기쁨과 사랑에 흠뻑 취하게 하는 포도주는 주님 사랑입니다.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주님의 사랑을 마시는 것입니다. 새로운 사랑의 포도주를 마시는 사람은 예수님처럼 새로운 사랑, 곧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도록 그리고 주님의 이 놀라운 사랑을 남에게 건네주어야 하는 부름을 받습니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2,10) 사랑이 어디에서 시작했는지 근본적으로 성찰하지 않고서는 성체성사에서 드러나는 주님 사랑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의 놀라운 사랑과 그 힘은 자신이 너무나도 무력해서 좌절할 때, 자신의 부족함에 부끄러움을 느낄 때, 죄 없이 오해를 살 때 등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밑바닥의 시간, 침묵의 시간에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사랑은 믿음의 눈을 뜨게 하고, 바로 그 순간 주님의 빛 안에서 그 빛을 향해 걸을 때 시작합니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첫 번째 표징을 갈릴래아 카나에서 행하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새로운 질서의 첫 번째 목격자들이며, 사랑의 수혜자들이었습니다. 사랑으로 눈을 뜨게 되고 마음이 열린 제자들은 이제 자신들이 체험한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베풀어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혼인 잔치에 초대받고 주님께서 새롭게 선포하신 새로운 사랑의 질서를 목격하고 그 사랑의 질서 안에서 자신들의 존재 이유와 사명을 깨닫고 그 사랑을 살았던 제자들처럼 우리도 주님 사랑을 마시고 사랑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갑시다. 자기 주인을 알아보고 얼굴을 붉힌 물의 자세와 마음으로 우리 역시 기쁨과 환희에 넘쳐 사랑으로 변화된 삶을 우리 각자가 받은 은사를 통해서 세상에 사랑을 증거하도록 합시다. <물이 그 주인을 알아보고 얼굴을 붉혔다!>,<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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