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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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나 포올러스가 쓴 ‘꽃들에게 희망을’ 이란 어른 동화가 있습니다. 이 동화는 애벌레가 나비로 변화하는 과정을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책의 제목에서 느끼는 것처럼 한 애벌레가 나비로 변화됨으로 이 세상의 모든 꽃들에게 희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애벌레가 나비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겉모습이 죽어야만 참모습으로 변모할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은 ‘하늘의 별만큼’ 많은 후손과 넒은 땅을 약속받았지만, 그에게는 사실 단지 늘그막에 나은 아들 외에는 많은 후손도 없었고, 많은 땅도 없었습니다. 더욱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자신의 외아들을 하느님께 바쳐야 했고, 고향을 떠나 낯선 땅을 떠돌아다니는 나그네살이를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눈에 보이는 축복이 없었음에도 끝까지 그 신앙을 지킴으로 후손들에게 희망의 표본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은 예수님의 변모 순간을 입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시어 기도하시는데, 주님의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고 들려줍니다. 아울러 그분은 영광에 싸여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을 나누었다고 일러줍니다. 그리고 구름이 일더니 그들을 덮었고,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9,35)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를 자세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본 제자들의 마음은 어떤 상태였을까요? 그 힌트는 <자기들이 본 것을 그때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9,36)는 표현에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왜 무엇 때문에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수난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서둘러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을까요? 예수님은 어쩌면 당신의 죽음을 미리 내다보셨고, 당신의 고난과 죽음을 목격하고 직면했을 때 제자들의 절망과 혼란 또한 내다보셨습니다. 그때를 대비해서 제자들이 실망하지 않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실현하고 성취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고난을 당하시고 죽을 수밖에 없음을 당신의 거룩한 변모를 통해 미리 제자들에게 앞당겨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후에 당신이 수난 당하고 십자가에서 죽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용기를 갖고 일어서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체험을 떠올리며 의심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모세와 엘리야처럼 생명의 나라에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변모 사건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시고자 했던 위안과 격려의 자리이며 시간이었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변화는 고통이 따릅니다. 애벌레의 상태를 기꺼이 포기해야 하는 아픔처럼 자기의 가장 소중한 아들을 바치고 고향 땅을 버려야 하는 아픔, 자기의 가장 소중한 목숨마저 바쳐야 하는 아픔이 따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아픔을 싫어하고 베드로처럼 주어진 현실에 안주해 버리고자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엘리야에게 드리겠습니다.”>(9,33) 이 말은 이곳에 초막 셋을 지어 여기서 오순도순 그냥 살자는 말입니다. 환대는커녕 적대로, 환영은커녕 배척하는 사람들은 다 잊고 여기서 그냥 마음 편하게 눌러 앉아 살자는 뜻입니다. 그땐 베드로는 물론 다른 제자들도 사실 왜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시고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해야 했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 제자들은 모세와 엘리야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겁이 났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은 미쳐 그 뜻을 온전히 알아듣지 못했음을 복음은 말하고 있습니다. 아직 제자들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훗날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 그리고 부활을 경험한 뒤에야 비로소 그 뜻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거룩하게 변화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자기를 포기하는 아픔을 받아들이십시오. 자신의 상처를 놓아버리십시오. 우리도 사도 바오로처럼 십자가의 원수가 아니라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원수로 살면 그 끝이 멸망이지만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선택하면 그 끝이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필리피 교우들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형제 여러분,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으십시오.>(3,20.21) 

제자들은 순간이었지만 영원을 목격하고 체험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그들은 스승에 대한 믿음을 더 굳게 다지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체험이 없었을까요. 우리에게는 그분의 변모 사건이 없었을까요. 신앙 안에서 낙심하지 말라고 그분께서 개입해 오신 사건은 없었을까요. 사람들은 쉽게 잊어버립니다. 고통과 역경 속에 놓이게 되면 좋았던 순간, 행복했던 것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면서 기적을 체험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수난의 순간이 오자 스승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절망에 빠져 도망쳐 버렸습니다. 변모 사건의 기억도 소용없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을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면, 그들은 좌절과 절망 속에서 무너져 버렸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찾아 가셨기에 제자들은 사도로 불림 받았던 초심으로 되돌아가 ‘사람 낚는 어부의 역할’을 충실히 실행하며 복음을 굳건히 선포하였습니다.  

우리 역시도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하느님의 무수한 은혜를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참된 신자는 이러한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에게는 반드시 은혜로운 기억이 있습니다. 고통으로 시작했던 일들이 평화와 위안으로 마감된 사건들 말입니다. 왜냐하면 잊어버리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잊지 않기에 감사할 수 있고 그래야 신앙은 활력으로 넘칩니다. 누구에게나 주님께서 개입하신 사건은 있기 마련입니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십시오. 얼마나 위험하고 힘들었던 순간들이 많았던가, 그때마다 하느님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역경을 만나 기도했는데 역경이 끝난 뒤에는 우연으로 여긴다면 얼마나 어이없는 생각입니까. 너무 쉽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게 바로 현실적인 유혹인 것입니다.  

주님의 변모는 일회적이지만, 주님은 우리네 삶에서 어렵고 힘들 때 늘 함께 게시면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과 고통은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믿음으로 잘 견디어내고 받아들이면, 머지않아 부활을 맞게 되리라고 격려하며 위로해 주십니다. 변모 사건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미리 앞당겨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사순절을 지내면서 가끔씩 부활을 생각해야 합니다. 미사 가운데 ‘신앙의 신비’ 3양식에, <십자가와 부활로 저희를 구원하신 주님, 길이 영광받으소서.>라고 외치는 고백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야 합니다. 무작정 참고 인내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을 희망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떤 부분이 죽고 부활해야 할지 생각하면서 사순 둘째 주간을 보내도록 합시다.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로소이다.>(시27,1;화답송 후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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