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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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도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10,17.20) 지금껏 세상을 살아오면서 여러분이 열심히 노력해서 이룬 성과 혹 성공을 가장 기뻐해 준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이 질문을 던지면서 저는 이미 제 어머니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아마도 저의 삶에 있어서 모든 실패와 성공의 순간 어머니가 계셨기에 기쁨은 늘어났고, 슬픔은 줄었다고 봅니다. 무엇이든지 제일 먼저 자랑하고 싶은 분은 엄마였고, 기쁘고 들뜬 마음에 숨이 차오르는 것도 아랑곳없이 엄마에게 달려가서 알리고 싶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면서 다시금 그때의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마치 이사야의 예언처럼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 어머니 위로의 품에서, 젖을 빨아 배부르고 젖을 먹어 흡족해지리라. 무릎 위에서 귀염을 받으리라. 이를 보고 너희 마음은 기뻐하고, 너희 뼈마디들은 새 풀처럼 싱싱해지리라.”(66,11~14참조) 하지만 이젠 인생에서 그렇게 가슴 벅차도록 자랑할 일도 없지만, 이젠 그런 기쁨이나 어려움을 어머니와 나누고 싶어도 아니 계십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어쩌면 위와 같은 추억에 젖을 수 있었던 것은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예수님께 말하였다.’라는 부분입니다. 제자들의 보고를 들으시면서, 예수님 또한 참으로 기쁘셨을 것입니다. 일흔두 제자가 스승이신 예수님께 그렇게 황급히 되돌아와서 기쁨에 넘치도록 말하는 것이나 제자들의 보고를 듣고 함께 기뻐하신 예수님 역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지요. 사실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예수님이나 예수님의 명으로 파견된 제자들 역시 이런 결과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그들이 스승의 곁을 떠날 때, 그들은 예수님의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낸 것은 아닐까’라는 안타까움과 염려 속에서도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10,3..4참조) 그런 가운데서 제자들은 가는 곳마다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10,4.9)라고 선포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늘 상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활동하신 모습을 지켜보는 처지였지 스스로가 독자적으로 활동한 적이 없었기에 경험 부족만이 아니라 그들 각자의 개인적인 능력이나 자질을 생각할 때 그들은 사실 회의적이었고 비관적인 상태로 파견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사절로’ 말씀을 선포하고 활동한 결과 자신들이 예상하지 않은 일들이, 심지어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자신들에게 복종하는 것”(10,17)을 체험하면서 그들 스스로가 더 놀랬으며, 그런 결과에 대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들떠서 예수님께 한걸음에 달려왔다고 생각됩니다. ‘와 대박, 대박 사건’ 하면서 한 조씩 되돌아오는 모습이 상상되시잖아요. 일흔두 제자가 두 사람씩 파견되었죠. 36조가 각기 다른 지역으로 파견되어 한결같이 놀라운 결과를 체험하고 되돌아와서 서로 먼저 예수님께 그 결과를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조의 놀라운 결과를 반복해서 들으면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한 그 자리는 그야말로 기쁨과 환희로 충만한 자리였을 것이며, 모두가 기쁨으로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너무 감격에 벅찬 나머지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10,18)라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아마도 널뛰듯이 더 기뻐 환호하였으리라 봅니다. 예수님의 기쁨으로 들뜬 표정과 평소와는 달리 조금은 큰 몸짓이 상상이 가십니까? 이는 곧 제자들을 치켜세우시고, 칭찬하시는 부모의 마음입니다.

물론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미소’를 지으신 예수님께서 한층 신바람이 난 제자들의 기를 꺾으려는 의도가 없었기에 그렇게 과장된 칭찬을 해 주시면서도, 세상에서 제자들이 이룬 일의 성과 보다도 더 중요 점은 바로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더 기뻐하여라.”(10,20)고 환기시키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역시 세상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선포하고 병자를 치유하는 일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이런 모든 일의 결과가 우리의 능력이라기보다 예수님 이름 때문이며, 아버지 하느님의 보살핌과 도와주심 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를 충실히 수행한 우리 모두를 아버지의 마음에 새겨두셨다는 사실입니다. 제자들은 물론 우리 역시 타인으로부터의 칭찬과 찬사에 우쭐대며 기뻐할 일이긴 하지만 이 보다도 하느님의 도구이며 연장으로 쓰임 받았음에 감사하고 기뻐해야 하리라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으로부터 받은 모든 칭찬과 찬사는 오로지 주님의 이름으로 돌려 드리고 “자랑하려는 사람은 주님 안에서 자랑하도록”(1코1, 31)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사도 바오로는 갈라티아서를 통해,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6,14)고 자신의 체험을 고백하면서, “형제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여러분의 영과 함께하기를 빕니다.”고 기도하십니다. 

이로 인해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10,21)라고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큰 기쁨과 자부심으로 충만하셨을까 상상만 하여도 그분의 기쁨에 전염된 듯합니다. 제자들로 인해 이렇게 아버지께 기도하신 예수님도 지나온 삶의 어렵고 힘든 순간을 떠오르면서 벅찬 기쁨과 보람을 느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는 곧 지금도 우리를 통해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해 주님께서 똑같이 반응하시리라 믿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 역시도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한없이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낍니다. 철부지와 같은 제자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으니, 예수님께서 그토록 기뻐하신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파견 사명이란 곧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며 이는 구체적으로 하느님 나라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 자신뿐 아니라 제자들, 못난 사람들, 철부지들을 통해서 실현되기 시작한 것을 목격하신 예수님은 아버지께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10,21)고 기쁨에 넘쳐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 모두를 춤추게 하며 우리 모두에게 큰 위로와 축복을 내리는 듯싶습니다. 늘 상 부족하고 모자란다고 생각해서 예수님 앞에 주춤거린 우리 모두를 영적 기쁨과 행복으로 춤추게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더욱 오늘 사도 토마스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 얼굴에 주님의 얼굴이 빛나게 해 주시니 말입니다. “주님, 당신은 세상의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이 아닌 못나고 부족하고 철부지와 같은 저희를 당신 구원의 연장과 도구로 선택하시어 저희가 하는 일을 통해 세상에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셨으니 저희에게 힘을 실어주시고 힘을 주십시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당신의 얼굴을 저희를 통해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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