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길냥이

by 후박나무 posted Oct 2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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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주 천천히 는개비속을 걸어 우이령을 다녀오다. 평소보다도 더 늦게 걸으니 안 보이던 것이 보이고, 안 들리던 소리들도 들려온다. 모든 일에는 반대급부가 있게 마련이다. 얼음 밑을 흐르는 물소리와 너무도 흡사하게 ‘돌돌돌’ 하며 흐르는 작은 계류와 딱따구리 소리도 들려 주변을 다시금 살펴보기도 하고. 오늘은 날개색이 다른 까치 떼와 화려한 장끼도 만났다. 역시 자연은 보기처럼 그렇게 평화롭지는 않았다. 까치 떼는 한창 나방들을 쫓아다니며 포식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도 또 다른 반대급부가 있겠지.

 

예수님은 “깨어 있으라” 고 당부하신다. 공자는 “아는 것은 좋아하느니만 못하고 좋아하는 건 즐기느니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知者)”고 하셨으니, 깨어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이나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깨어있음을 좋아하고 나아가서 즐겨야 할 것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 법이다. “하느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보고 맛들여라.”

 

어제 길냥이 밥을 챙기다 노랑이와 만났다. 길냥이 밥을 주기 시작한지 4달 만에 어제 처음 노랑이가 내게 다가와 사료를 먹었다. 그 다음에는 바둑이도 와서 먹고. 아직 경계를 다 푼 것은 아니지만, 내가 자신들을 헤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은 생긴 것 같다. 관계를 만들기까지는 서로 오랜 기다림이 있어야 한다. 깨어있는 상태가 어떤 건지 맛보고 익숙하게 되어 즐길 수 있기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