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고난회원의 안목

by 후박나무 posted Oct 30,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지난주일 천둥과 번개가 요란한 가운데 비와 우박이 쏟아졌다. 덕분에 한동안 명상의 집 전화와 인터넷이 두절되었었다. 가끔 이렇게 통신망이 단절될 때 우리의 의존도(依存度) 혹은 중독성(中毒性)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된다.

 

걸어온 족적(足跡)을 찬찬히 뒤돌아보면 소위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은 파편처럼 흩어져만 보이던 삶의 편린(片鱗)들이 한 순간 통합되어 살아갈 방향을 가리킬 때였다. 그런 순간은 누구에게나 자주 혹은 여러 번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한 번 방향을 정한 후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그렇게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겨자씨를 크게 자라게 한다. 결단을 내려 수도생활에 입문했다 해도 뭐 중뿔나게 특별한 일은 없다. 그저 아침, 저녁 성무일도와 개인기도, 주어진 역할의 일상을 해 나가는 거다. ‘노인과 바다’ 의 늙은 어부 산티아고처럼 84일째 아무것도 못 잡았지만 그래도 다음날 다시 바다로 나가듯이. 이런 일상이 쌓여 다름을 만든다. 인생의 계절이 바뀌는 이 환절기에 방향을 수정하고 다시금 달라진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

 

40여 년 전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Jesus Before Christianity) 를 썼던 ALBERT NOLAN 은 2006년 쓴 JESUS TODAY 에서 Johann Metz의 말을 인용한다. “나와 너의 고통 그리고 서로에게 고통을 유발시키는 무의식적 버릇보다 더 진솔하고 포괄적으로 사람이 한 세상을 산다는 게 무엇인지 그 의미를 밝혀주는 것은 없다.”

Nothing characterizes our experience of life more honestly and comprehensively than our experience of suffering, our own suffering and that of others – together with our habit of making one another suffer.

 

인류의 역사책은 군사적 승리나 정복, 위대한 문명과 놀라운 발명과 발견등 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그것으로 감추고 있는 건 이 모든 일들 배후에 켜켜이 쌓여있는 인간의 고통이다. 고난회원이 지닐만한 안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