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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by 후박나무 posted Nov 0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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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축일이다. 로마의 우리 본원에 있는 SS, GIOVANNI E PAOLO BASILICA에서 도보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로마 최초의 바실리카 양식의 대성당이다. 오늘 축일은 324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라테라노 대성전을 지어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 대성전은 ‘모든 성당의 어머니요 으뜸’으로 불리면서 현재의 베드로 대성전이 세워지기 전까지 거의 천 년 동안 역대 교황이 거주하던, 교회의 행정 중심지였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수많은 붉은 십자가가 명멸하는 서울의 야경이라도 본다면, 각 유명가문마다 경쟁적으로 자신들의 개인교회를 세워 교회가 넘쳐나는 로마못지 않게 우리나라도 교회가 포화상태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을 세우는데 중점을 두지 않고, 건물을 세우는데 열심이었던 결과다.” 현재 가톨릭의 세계적인 중심교회 역할을 하는 베드로 대성전만 해도 소위 ‘면죄부’를 팔아 건축자금을 조달했던 어두운 흑역사가 있다.

 

이렇게 교회가 혹은 종교가 사람을 세우는 것 보다 건물을 세우는데 치중할 때, 에제키엘의 말처럼 만물을 살리게 하는 생명수가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는 사해처럼 모든 것을 끌어들여 세상을 피폐케 하고 자신만 살찌워 그 존재이유를 상실하게 된다.

 

복음의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현상을 역전시키고자 “기도하는 하느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상인들을 내쫒아 성전을 정화한다. 종교는 쉽게 그 존재이유가 현세에서 “입신양명(立身揚名)” 하여 “부귀영화(富貴榮華)” 와 “무병장수(無病長壽)”를 누리고 내세도 보장하는 보험으로 변질된다. 이와 대조되는 교회다운 교회의 모델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예루살렘교회’이다.

 

사도행전 4:34 그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팔아서 그 돈을 35 사도들 앞에 가져다 놓고 저마다 쓸 만큼 나누어 받았기 때문이다.

 

수년전 안동의 하회마을을 둘러보면서 내용과 형식이 어떻게 서로를 보완할 수 있는지 잘 볼 수 있었다. 사대부들의 집은 그들이 살고자 하는 가치와 이상을 생활 속에 느낄 수 있게 육화시켜놓음으로 서로를 견인하고 있었다. 한 예를 들어보면, 솟을 대문 옆의 담에 손을 넣을 수 있는 구멍이 있고 그 안에 현금을 넣어두어, 어려운 형편에 처한 사람은 누구든지 마음대로 꺼내갈 수 있게 하였다. 가톨릭의 성당 건물에도 이렇듯 어려운 사람들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지 않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배려가 반영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