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부고

by 후박나무 posted Feb 1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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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남 교수님이 다녀가셨다. 남종삼 성인의 후손이라는 빛과 그림자를 모두 지고 사신분이다. 지금은 90세가 가까우니 이도 저도 다 내려놓은 상태이시리라. 사실 남 교수님보다 그 짐을 더 지며 살 수밖에 없었던 분은 일찍 작고하신 사모님 정 정원 로사 자매님이시다. 새 신부 시절 저를 만나면 항상 손을 잡고 놓아주지를 않아서 기피인물 1호였는데, 세월도 많이 가고 그분도 가시고 나도 나이를 먹어 이제는 이해가 된다. 북악터널 넘어 평창동의 어느 호텔 커피숍에서 96년경에 뵌 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남 교수님이랑 봄이 오면 산소에 함께 가기로 하다.

 

작년 여름에 쿠니 신부님이 떠나신 후 별다른 소식이 없던 일본 준관구가 줄초상이다. 그럴 때도 되었고. 지난주일 프랑스계 선교사 가브리엘 신부님이 떠나시더니 어제는 워드 신부님이 떠나셨다. 가브리엘 신부님은 로마에서 학위를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3개월 예정으로 일본어연수를 위해 도쿄의 나리따 공항에 내렸을 때 마중 나오셔서 처음 뵈었다. 그때가 아마 92년 가을이었을 게다. 워드신부님과는 보다 자주 만나기도 하고 교류도 있었다. Paspac 미팅때 한국에서 간 수사님들 위해 자원하여 관광가이드를 하시고 나는 통역을 하며 많이 친해졌었다. 한국과 일본 관구 조인트 미팅후 히메이지성을 방문했던 2007년에 뵌 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내 옆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계신분이시다. 따뜻한 성품에 친절하신분이셨다. 말년엔 귀가 안 들려 고생하시고! 이제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오늘 복음은 자존심과 진정한 자존감의 미묘한 차이를 보여준다. 자존심은 자주 외부의 평가에 의해 상처를 받거나 높여지는데 반해 자존감은 그 주체가 확고히 자신에게 있다. 시로 페니키아 부인은 나름 확고한 자기원칙이 있었기에 예수의 모욕적인 언사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믿음을 관철시킨다. 어떤 성서학자들은 이 대목을 “예수가 역으로 복음화 되는 이야기” 라고 한다. 수십 년을 일본의 복음화를 위해 일생을 바쳤으면서도 가시적인 열매도 별로 없이 떠나셔야 했던 워드 신부님은 아마도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다.

 

“나는 내가 선택한 것을 지켰다. 그것이 나의 자유다!” 워드 신부님은 진정 자신을 존중했던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