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두렵고 떨리는 황홀한 신비

by 후박나무 posted Mar 1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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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축일이다. 동방정교회에서는 가장 큰 축일로 지내는 날이다. 라틴교회가 성화(聖化)라는 말을 쓸 때 동방교회에서는 신화(神化)라는 말을 쓸 정도로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기에, 인간도 하느님 같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오늘은 어떤 일을 맡기려고 부르시는 소명이란 관점에서 본문을 보고자 한다.

 

하느님을 만나고 그 결과 자기가 누구이며 또 일생에 걸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받아들이게 되는 체험을 서술한 것을 소명사화(召命史話)라고 한다. 불타는 가시덤불에 가까이 갔다가 야훼 하느님을 만나서 억지춘향격으로 Mission을 받은 모세, 어린아이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주의를 들은 예레미야, 이사야, 호렙산의 동굴에서 가녀린 목소리의 하느님께 새로이 부름을 받는 엘리야든 구약성서의 소명사화는 다소 화려하고 극적인데 반해 신약성서에서는 예수께서 부르시니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다는 지극히 단조롭고 밋밋한 보고만 반복된다. 그나마 다마스쿠스로 가던 사도 바오로의 극적인 체험이 있어 다행이긴 하다.

 

혹시 신약성서에 제자들의 소명사화가 없거나 빈한한 이유는 예수님의 소명에 집중해서 그런 건 아닐까? 예수님의 부르심과 맡겨지는 미션에 관한 에피소드는 3개나 있다. 공관복음의 마태오와 루카는 마르코를 따라 첫 번째는 예수가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올 때, 하늘이 갈라지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며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예수의 첫 번째 미션은 새로운 세상의 건설임을 암시한다. 요르단 강과 비둘기는 창세기의 노아를 연상시킨다. 두 번째는 타볼 산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잘 들어라” 이다. 이제 예수의 미션도 중반에 접어들었다. 예수는 모세와 엘리야의 전범에 기대어 자신의 미션이 필연적으로 가져올 결과를 내다보며 마음을 다진다. 세 번째는 전혀 그럴법하지 않았던 사람,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던 로마인 백인대장의 입에서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 라는 고백을 하게한다. 두 번은 하늘에서 들려온 소리였으나 세 번째는 인간의 입에서, 그것도 이방인 백인대장이 그의 미션이 진정으로 성공했음을 고백하게 한다.

 

비단 예수님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도 하느님을 만나, 자신과 세상과 화해하게 되어 자기가 누구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신을 가졌던 순간이 있다. 그야말로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들의 생애가 모조리 그런 순간으로 이뤄질 수 없음은 자명하다. 성석제씨의 말마따나 이런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은 그렇지 못한 지루하고 무미건조한 일상에 빛을 비춰 방향을 잡아주고 의미를 잃지 않게 하며 자물쇠를 여는 열쇠의 역할을 한다.

 

오늘 타볼 산에서의 변용을 읽으며 그렇게 빛나던 시절을 되새기며 그 빛으로 다시금 빛을 보게될것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