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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2 20:18

메이와 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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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엘리사벳 (광주)  

 

하느님과 우리를 코끼리와 개미에 비유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코끼리 몸에 붙어사는 눈곱만한 개미가

거대한 코끼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없지만 코끼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안다는 것이다.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짐작하며 산다.

나는 그분께 속해있으며 살아가는 내내 그분을 더 많이 알아갈 것이라고 확신하며 산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이 그분을 증명한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외모, 성격, 생각이 각각 다른 것은 놀랄 것도 없고

동물들도 그렇다는 것을 우리 메이와 줄리를 보면서 안다.

그분의 창조력을 상상해 본다.

 

메이는 5월 진도 장날에 만났다.

아침식사를 차분히 마치고 정오쯤 장에 도착했다.

장 구석 몇 마리 남아 있지 않은 힘 빠진 강아지들 중

우리에게 호기심을 보이며 다가온 아이가 메이다.

다음 6월 장날 이른 새벽에 출발해 아침 일찍 도착했다.

장 입구 수많은 강아지들 중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며 추천된 줄리가 우리 가족이 되었다.

 

두 녀석 모두 겁쟁이라는 것을 빼면, 외모와 성격, 사랑받는 비장의 무기가 모두 다르다.

메이는 다리와 몸길이가 짧고 사료만 먹어도 살로 가는 억울한 체질이다.

줄리는 보통의 진돗개보다 1.3배는 길다.

입이 짧아 깨진 독에 물 붓듯 신경 써 먹여도 살이 붙지 않는다.

금방 먹고 또 먹고 싶어 하는 메이도,

맛있는 것만 골라 먹고 굶고 앉아있는 줄리도 보기 짠하다.

그분도 이런 마음이시겠지?

이래도 짠하고 저래도 짠한 마음.

 

낯선 손님을 대하는 법도 다르다.

전기검침 여사님, 택배아저씨가 방문하면 메이는 너무 반가워 두 발 들고 환영한다.

집안 대대로 사랑만 받았는지 사람 무서운 줄 모른다.

줄리는 1~2m 떨어져 짖는다.

줄리 눈빛에서 낯선 사람이 무서워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줄리에겐 일정한 산책 코스가 있다.

뒷산 입구까지 올라갔다가 옛 철길 공원을 도는 것인데 코스가 점점 확장되고 있다.

긴 네다리로 걷는 녀석이 앞서가며 나를 운동시킨다.

메이는 집 앞 골목 사거리를 벗어나는 일이 없다.

나를 믿고 따라오면 멋진 공원을 볼 수 있을 텐데

조금 더 가려 하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꼼짝 않는다.

좁은 골목 구석구석 빈틈없이 냄새 맡는다.

나는 가만히 서서 기다려야 한다.

멍하니 서 있다 담벼락에서 일광욕 중인

고양이의 못마땅한 시선과 마주쳐 화들짝 놀라곤 한다.

더이상 가지 않고 주저앉은 메이를 볼 때 나도 이렇게 주저앉지 않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분께 의지해 걱정 않고 살면 되는데 겁내고 무서워 내 뜻대로 고집하진 않았나,

그분을 답답하게 해드리진 않았나 되돌아본다.

 

사랑을 부르는 비장의 무기도 차이가 있다.

내 종아리에 얼굴을 비비고 배를 드러내면서,

도저히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하는 메이와 손이나 얼굴을 핥아 쉬지 않고 쓰다듬게 만드는 줄리다.

한 녀석만 편애할 틈이 없다.

눈으로 질투의 레이저를 쏘거나

처량하게 쳐다보며 동정심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도 공통점은 있다.

고기를 대하는 '일관된 태도'다.

고기를 향한 열정적인 눈빛과 집중력을 보면

세상사에 집착하고 소유하고 싶은 마음에서 자유롭지 못한 내 모습도 볼 수 있다.

 

메이와 줄리를 보면서 그분의 마음을 짐작해 보곤 한다.

온몸으로 나를 반기는 이 녀석들처럼 나도 그분을 반기고 따르며,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면 '기쁘시겠구나'.

슬플 때, 일이 잘 안 풀릴 때, 잘못해서 힘 빠져 있을 때 '참 짠하시겠구나'.

 

집 떠나 여행 중이다.

마음 독하게 먹고 간식과 통조림을 끊었다고 엄마가 소식을 전해주신다.

메이의 다이어트가 성공하길,

줄리가 사료만으로도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길 바란다.

 

진도개2.png

 

진도개1.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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