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목소리

by 후박나무 posted May 1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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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이 코앞에 다가왔다. 어쩌다보니 스승을 기리기만 하던 제자의 입장에서 어느 사이엔가 나도 모르게 가르치는 역할로 산 세월도 만만치 않다. 로마유학을 예정보다 일찍 마쳐 남은 세 달여의 계속교육을 일본에서 하고 10월에 돌아오자마자 광주 수도원으로 배치되었다. 다음해 광주수도원과 명상의 집 원장으로 임명되면서 광주 가톨릭대학에 출강케 되다. 그때 선배 신부님이 교수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하신 말씀을 지금껏 기억한다.

 

처음 강단에 서게 되면 아는 것 모르는 것 다 가르치려 하지만, 세월이 좀 흐르면 아는 것만 가르치게 된다. 좀 더 세월이 흐르면 필요한 것만 가르치고 종국에는 기억나는 것만 가르친다고…….

아마 노교수의 기억에 그토록 오래 남아있다는 것은 틀림없이 사는데 꼭 필요한 것일 게다.

 

그런 교수님 한분을 기억한다. Roma Angelicum에서 Mission을 가르치던 그 교수님의 이름도 얼굴도 지금은 기억을 못하지만 한 가지 가르침은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각 사람의 지문과도 같은 목소리에 관한 것이었다.

 

선교사로 외국에 파견되면 외국어에 대한 압박이 무척 심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목소리라 하셨다. 우리는 자신의 온 인격을 드러내는 목소리에 뜻을 담아 말을 한다는 것이다. 목소리는 자주 겉으로 나타내는 말의 의미보다 더 깊은 내면의 상황이나 정서, 상태를 계시한다. 겉으로는 평화를 말하지만 목소리에 증오와 화가 묻어날 때 우리는 목소리를 믿어야 한다.  행위는 존재를 따르기 때문이다.

 

양들도 감언이설(甘言利說) 일지도 모를 말을 듣기 전에 먼저 목소리로 감별(鑑別)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