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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5 10:16

내 마음속의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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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 안젤라 (서울 글방)

 

알프스의 산자락을 따라 성당들과 수도원을 찾아가며 성지순례를 하였다.

체코 프라하에서 출발하여 네덜란드까지 8개국 13일의 여정이다.

독일 시골마을 어귀에 있는 로코코 양식의 걸작, 피어첸 하일리겐 성당이 떠오른다.

파스텔 톤으로 천장에 그린 성화와 하양 대리석 천사 장식들은

화사하면서도 절제된 만큼만을 보여주었다.

'아! 천국은 이런 곳이겠구나.' 하는 감탄사가 나올 만큼 아름다움에 도취 되었다.

환상에 빠져 한참을 넋이 빠진 듯이 보았다.

미사가 끝난 뒤에 밖으로 나오니

성당으로 들어가기 전에 보이지 않았던 풍경들이 새롭게 보였다.

 

'아하! 하느님이 만드신 천국은 바로 여기였구나.'

성당 안의 조형물이 어느 건축가가 상상한 천국이라면 눈 덮인 고요한 세상,

파란빛 호수, 맑은 하늘의 뭉게구름, 야생 꽃들, 단풍 진 나무들,

아름다운 전원 풍경 등 하나하나가 생기로 가득 차

모두 다 하느님의 창의를 보여주는 천국 같았다.

 

다시, 순례 여정을 하면서 내 마음과 닮아 설레게 하는 성당도 만났다.

스위스 클라우스 성인이 살았던 란프트의 자그마한 하얀 경당이다.

성인을 만나러 가는 새벽길은 별빛 따라 골짜기로 내려간다.

은은한 물안개 풍경 아래에는 서리가 깔려있고

계곡물이 흐르는 끝자락에 경당과 그의 은둔처가 있었다.

깨달음을 찾아 멀리 떠나려 했던 클라우드 성인은 마음 안에서 알아차림을 하였다.

그는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경당에서 하느님과 함께 살았다.

(신라시대에 당나라로 가던 원효가

어둔 밤에 마신 물이 아침에 보니 해골에 담긴 물이었던 것을 알고

마음의 문제라는 깨달음으로 뒤돌아 온 사연과 비슷하였다)

 

가는 곳곳의 성지마다 다양한 수도원들과

성모님 발현 기적의 사연들로 가득하여 벅차게 올라오는 감동들이 있었다.

순례는 한층 더 호기심으로 다가오며

불현듯 내 마음의 성당은 어떠할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침묵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이번 성지순례 여정은 소리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마음속으로 부터 들리는 소리를 듣기 위하여

세상의 소리나 생각은 잠시 꺼두어야만 한다.

고요로 부터 올라오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침묵으로 심연 깊은 곳에 있는 하느님을 만나기 바라며 걷는 여정이었다.

서서히 마음으로 부터 울림도 올라온다.

내가 하느님께 침묵으로 있을 때 점차 내면으로 올라오는 울림.

주님 현존 안에 머무른 순간처럼 평안 안에

사랑, 자비, 너그러움, 가엾음의 마음으로 하느님과 내가 통교가 되는 듯하였다.

 

나는 묵상하며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 방황하는 마음이

어디에도 두지 못하고 떠다니는 듯하였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만난 영성강의, 신앙 안에서의 만남들, 

책읽기와 글쓰기를 하며 나도 세상 안에서 하느님을 더 깊이 알아가게 되었다.

 

성지순례를 마칠 즈음에 마음의 방황도 멈추어지고 있었다.

마음이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묵상 시로 그림도 그려본다.

마음을 내리며 천천히 기쁘게 가는 길, 이 과정이 참 좋다.

아주 작지만 심오하고 경이로운 것들이 영감으로 떠오르며

조금씩 표현되는 기쁘고 놀라운 체험이 있다.

내 영혼에 부활이 일어난 듯 마음이 새로움으로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삶 안에서 건너뛰기는 없는 듯하다.

지금까지 겪은 희로애락을 보면서 성장하여 간다는 건

고통 안에 있을 때였고 타인의 다양한 삶 안에서 영향 받은 선한 것들로

아름답게 변화되고 있었다.

삶이 보다 더 풍성해지는 것이다.

 

내 마음속의 성당을 본다.

마음 깊은 곳에서 소박하고 은은하게 푸른 빛이 흐르는 듯하다.

아주 작은 경당에는 고요가 흐른다.

그 안에서 나는 순수하게 뛰어 노는 어린아이 마음 같다.

내 마음을 온전하게 다 아시고 다 받아주실 것 같은 너그러우신 분을 만난다.

 

그분 품에 나는 갸냘픈 작은 새 되어 다 맡기고 싶다.

안긴 새는 아주 깊이 포근한 잠으로 푹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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