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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글라라 (서울)

 

엄마는 당뇨를 앓고 있었다. 병원으로 진료 보러 오시는 길에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숨을 쉬기조차 힘든 과 호흡 상태였다. 그렇게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둘째를 임신한 상태라 가족들은 내가 걱정돼 마지막 모습조차 보지 못하게 하였다. 삶이 무너져 버린 기분이었다.

 

모두가 지쳐 잠든 새벽 친척 아저씨 한 분이 엄마의  빈소를 지키고 계셨는데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 어머니는 남들에게 눈치채지 못하게 몰래 물동이에 쌀을 담아다 준 일, 소 먹이를 만들어야 하는 아저씨 일까지 엄마가  도와주신 일, 먹을 것도 틈틈이 챙겨주신 일 등을 알려주셨다. 부모님을 일찍 여위고 힘들게 살아가던 시절에 당신에게 제일 고마운 분이시고 다른 어떤 친척들보다 심지어 아버지 친척이시지만 엄마를 제일로 여기고 있었다며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고 계셨다.

 

아저씨와의 일화를 가족들에게 이야기하자 너도 나도 엄마와 있었던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맨 먼저 큰언니는 여자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던 시절. 고등학교에 보내기 위해 읍내에 방을 얻어 공부할 수 있게 한 이야기를 꺼냈다. 둘째 언니는 칭찬받는 것이 좋아 어린 나이에 반찬을 만들기 위해 힘들게 감자를 깎는 모습을 본 후에 칭찬하던 엄마가 못하게 하셨다는 이야기를 했다. 셋째 언니는 동네 보따리 장사들이 오면 항상 식사했는지 먼저 물으시고 함께 식사하자고 권하시고 꼭 필요하지 않아도 보따리장수의 물건을 사곤 하시어 그들의 사정을 일일이 헤아리셨다는 엄마의 남다른 사랑을 기억했다. 이밖에 동네 술주정뱅이 아저씨까지 기꺼이 잔치에 초대하셨고 싸움도 엄마의  말 한마디로 꼼짝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 동네잔치에는 모든 사람을 챙기시며 어렵거나 참석하지 못한 분들의 사정은 어떻게 아셨는지 우리에게 심부름을 보내시곤 하셨다는 이야기, 농사철이면 아버지께서 일한 만큼 일당을 주시기로 하셨고 엄마는 항상 후하게 주셨던 이야기, 엄마의 두부찌개는 이 세상 어느 것보다도 맛있었다는 이구동성의 사위들 이야기까지 모두가 감사한 이야기들로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엄마가  어느 누구보다도 지혜로운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는 보따리장수들과 함께 밥 먹는 것이 싫어서 항의의 표시로 수저를 내려놓고 밥을 먹지 않았고 저를 달래 주거나 하지 않으셔서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나 하는 생각에 투정을 부리기도 했고 냉장고를 처음 사셨을 때는 이웃집에 얼음 심부름까지 시키셨다. 끼니때마다 밥을 넉넉하게 지으셔서 아버지의 핀잔을 들으셨고, 친척 어르신이 오시면 새로 밥을 지어 따뜻한 밥과 새로 만든 맛있는 반찬을 따로 내오셔서 어린 마음에 속상한 적도 있었다. 어리석게만 보이던 엄마의 삶의 방식, 모든 번거로움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시는 엄마의 모습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였다. 세상 잣대로 어리석게만 본 엄마는 당신의 죽음을 통하며 미련하고 어리석은 저에게 당신의 참모습을 보게 하셨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라는 말만 들으면 참회의 눈물이 나옵니다. 당신에게 하지 못한 말을 전합니다. “엄마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엄마의 제삿날은 단풍이 예쁘게 물들어 가는 가을날이라 우리 딸들은 소풍 가는 맘으로 갑니다.  엄마의 추억담과 함께 서로의 이야기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옵니다. 이렇게 좋은 시간까지 마련하여 주신 엄마에게  감사하며 오늘 하루를 소중하게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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