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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3 20:36

명절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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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 알렉시오(서울)

 

휴대폰에 아버지라고 뜨며 요란하게 울린다.

 

달력을 힐끔 쳐다본다. 명절이 가까워져 왔다. 통화버튼을 누르자마자 주말에 시간 괜찮으냐는 말부터 꺼내신다. 벌초하러 가자는 말이다. 산소는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 사는 곳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있다. 고속도로도 바로 앞까지 뻥 시원하게 뚫려 있다. 지금은 산소까지는 그리 멀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서울에서의 교통체증에 익숙한 나로서는 어찌 보면 그 시간이 그 시간인 듯하다. 근처에 사시는 고모부 내외가 나와 제초기로 다듬으신다, 산소에 돗자리만 깔고 나면 내 임무는 거기서 끝난다. 대략 뜨거운 차 한 잔 마시는 시간 정도이다. 어차피 다음날은 주일이라 쉬기 때문에 여유가 있다. 이번에는 고모부가 농사짓는 사과농장에 구경을 간다. 사과도 챙기고 점심도 먹고 비료도 챙기고 된장도 챙기고 출발한다. 물론 차도 막히긴 하고 휴게소도 들려 놀면서 쉬면서 가도 저녁 먹을 시간 정도에는 도착한다.

 

내가 딸과 비슷한 나이 때에 부모님과 함께 명절을 지내기로 시골에 가는 것은 지금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시골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시던 곳은 어린 기억에 한곳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난 안동권씨여서 안동과 경주, 영양, 선산, 문경 거기 어디였던 거 같다. 최종적으로는 명절에 가야 할 곳은 합창/점촌이라는 곳이다. 명절이 시작되면 아버지께서는 고속버스터미널에 가서 아이돌 콘서트장 입장을 기다리듯 밤새 줄을 섰다. 아침이면 어머니와 내가 교대했다. 그렇게 며칠을 고생해야지 버스좌석티켓을 얻거나, 그 짓이 너무 힘들어서 표를 못 구하면, 명절 전날 버스터미널로 가서 입석이라도 타고 가야 한다. 대기실도 없이 공터에 무수한 인파들이 모여 있다. 각자 탈 버스가 오면 서로 타려고 했다. 전쟁 통에 피난 갈 때와 비슷하다.

 

부모님은 짐을 들고나와 여동생을 업고 끌고 겨우 차에 올라탄다. 드디어 버스는 시골을 향해 출발한다. 불행하게 곧 버스는 제자리에 멈추고 만다. 차가 막히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냥 주차장이라고 보면 된다. 입석이니 버스 통로에 사람들이 꽉 차 있다. 옛날 버스는 왜 그리 독한 냄새가 나는지 오바이트가 쏠린다. 나와 여동생은 그나마 배려심이 있는 어른 무릎밖에 앉아서 가면 다행이었다. 자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다 잠이 깨면, 꽤 시간이 지나거나 거의 시골에 도착한 줄 알았다. 버스의 위치는 고작 만남의 광장 정도 왔을 뿐이다. 계속 막힌다. 승용차를 타고 편안히 자고 싶다. 아니 기차가 지나가는 곳에 시골이 있었으면 막히지는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어찌어찌 나는 졸고 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충주를 지나고 국도로 빠진다. 차는 이제 속도를 좀 내면서 달린다. 문경에서 반 정도의 사람들이 내려 식구들은 앉아서 가게 된다. 그즈음에 들리는 휴게소의 가락우동의 맛은 정말 최고였다. 시골에 가기 싫어 퉁퉁거리면 부모님은 휴게소 가락우동으로 꼬시고, 난 거기에 넘어갈 정도로 정말 맛있었다. 시골 가는 버스의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문경새재를 넘어갈 때다. 왠지 비행기를 타고 가는 듯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과 차가 서로 한 대씩 왕복하는 그 좁은 산길 도로를 요리조리 쌩쌩 달리는 스릴은 시골 가는 고생길의 힘듦을 조금은 날려주었다. 센스가 있으신 운전기사 분은 문경새재 꼭대기 휴게소의 내려 잠시 휴식시간을 주기도 했다. 바람이 태풍처럼 부는 곳이다. 난 벼랑 가까이 서서 음료수 캔을 던지는 놀이를 했다. 던진 캔은 다시 나한테 돌아오고 다시 던지고 너무 재미있어했다. 그러나 곧 버스로 복귀했다. 차장밖에 승용차로 시골 가는 사람들은 더 놀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드디어 점촌함창버스터미널에 도착했고 거기서부터 나름 번화가인 읍면 소재지를 걸어 그렇게나 부럽던 기찻길이 아래로 지나가는 고가도로를 건너갔다. 건너가면 소고기를 신문지에 말아주는 정육점과 물건 몇 개 없는 슈퍼에서 청주 한 병을 사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반겨주시는 집으로 들어갔을 때의 안도감은 정말 잠시뿐이었다.

 

명절특집방송이 안 나오는 텔레비전을 붙잡고 펜치로 채널을 돌리다 포기했다. 시골 근처는 석탄광산이 가까웠다. 주위가 시커멓던 나무들이 많아 집 근처로 나갈 수도 없었다. 또래 친척이나 친구들이 없어 혼자 마당에서 나뭇가지를 들고 칼싸움을 했던 지루함이 떠오른다. 저녁이 되면 또 어른들의 말다툼으로 어색한 분위기가 휩싸인다. 좁은 방에서 같이 자는 것도 불편했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 한적함, 어색함, 심심함보다도 내일 집에 다시 가면서 겪어야 할 그 고통이 스멀스멀 날 덮치기 시작한다. 애들 학교 가야된다고, 차 안 막힌다고 새벽 첫차를 탄다. 그나마 앉아서 갈 수 있어 만족했다. 명절의 마무리는 집 도착 후 외갓집으로 가서 외숙모가 남겨놓으신 문어 다리를 질겅거리며 외사촌들과 놀았다.

 

나도 나이가 한두 살 먹기 시작하고 작은아버지가-그때는 삼촌- 큰 트럭을 몰다가 봉고차를 샀을 때는 이미 크고 넓은 길이 뚫리고, 차 뒤에 벌렁 누워 워크맨을 꼽고 음악을 들으면서 편안히 갔다. 우리 집도 승용차가 생겼다. 그러나 문경새재 꼭대기 안가고, 그 맛있던 가락우동을 파는 휴게소도 어디인지 못 찾겠다. 결국 다른 휴게소에서 그 맛을 그리워할 뿐. 이제 세월이 흘러 할머니 할아버지도 하늘나라로 가셨다. 명절에 시골 가는 일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그저 부모님과 함께 승용차를 타고 휭하니 산소에 갔다 오면 끝난다.

 

휴대폰에 아버지라고 뜨며 요란하게 울려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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