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의 탄생'

by 후박나무 posted Dec 2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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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성탄절이 내일 모레다. 요한네스 타울러가 강론한 것처럼, 우리에게 한 아이가 주어지는 날이며 저마다의 깊고 고요한 마음속에 한 아이가 태어나야 하는 날이다. 그 아이의 탄생은 지나친 우상화나 상업화 혹은 세속화로 인해 본래의 밑그림이 어떤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왜곡되고 덧칠로 뒤덮여 있다.

 

이런 현상은 알레고리적(우의적) 인 성서해석이 주류를 이루던 19세기말까지는 비교적 덜했는데 20세기, 성서를 소위 과학적으로 연구한다는 비평학이 발전하면서 이성에만 의지하는 경향과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물질주의로 인해 심해진 것 같다. 가톨릭 성서학계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레이몬드 이 브라운 신부는 지나친 덧칠과 왜곡으로 참 뜻이 희미해진 성탄의 의미를 다시금 밝히고자 했다. 레이본드 신부는 그의 저서 “메시아의 탄생”을 통해 로마제국의 식민지 유다, 그중에서도 변방에 속한 갈릴레아의 한 청년이 그의 삶과 죽음을 통해 마침내 메시아로 간주되기에 이르는 과정을 면밀히 살핀다.

 

그리스의 폭정에 반기를 들고 싸우던 유다는 곧 이어 로마의 식민지로 편입된다. 유다 땅에서도 변두리 주변부인 갈릴레아에 살던 한 청년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고 나섰다. 그는 갈릴레아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점차 활동의 중심지를 예루살렘으로 옮겨간다. 그가 말하는 하느님은 사두가이나 바리사이들, 소위 종교전문가들이 가르치던 하느님과는 판이하였다. 군중은 그에게로 쏠렸다. 유다의 종교적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특권과 지위를 하느님이 어떤 분인가 하는 해석에 기반하고 있었는데, 예수는 사실상 이 지반을 소리 없이 와해시키는 언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예수는 그 누구보다도 더 위험한 인물이었으며 반드시 죽여 입을 막아야 할 사람이었다.

 

인간의 역사에서 누누이 반복되었듯이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은 이미 스스로 사형선고를 내린 사람과 다르지 않다.  예수도 당시 사회의 실력자들에 의해 거짓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비록 체포와 보복이 두려워 도주하였던 제자들은, 스승의 삶과 억울한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이 화두를 해소시키지 않고서는 살수도 죽을수도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제자들은 많은 고뇌와 숙고의 시간을 지내며 구약성서에서 예수의 생애의 의미를 암시하는듯한 본문들을 발견하고 이를 재해석하게 된다. 그런 사투 끝에 끝내는 예수를 메시아로 탄생시킨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메시아의 탄생‘ 이다.

 

신약성서는 시작부터 예수는 메시아임을 선포하며 시작하지만, 예수가 메시아임을 전심으로 납득해야만 하는 후세인들은 “믿습니다!” 라는 열린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 저마다 예수가 왜 ‘메시아’ 인지 왜 ‘나의 구원자’인지를 온 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되는 깨침이 있을 때 비로소 그에게 ‘메시아의 탄생’ 이 될 것이며, 성탄절이 해마다 하염없이 반복되는 무의미한 전례 이상의 의미를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