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by 언제나 posted Jan 1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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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Jn3,22~30)에 의하면, 세례자 요한은 스스로를 가리켜, 신랑의 소리를 듣고 크게 기뻐하는 <신랑의 친구>라고 표현합니다. 저는 유다인들의 혼례 풍습을 잘 모르지만, 예수님 당대의 <신랑 친구>는 유다인의 혼례에서 아주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신부와 신랑의 대변인으로 행동했는데, 그래서 신랑의 친구는 혼인 청첩장도 만들고 혼인 잔치를 주관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랑 친구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임무가 하나가 더 있었는데 그것은 신랑이 올 때까지 신부의 방을 지키다가, 안전하게 신부를 신랑에게 인도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가 자기에게 맡겨진 역할을 소홀히 하여 신부를 엉뚱한 사람에게 내주면 혼인 잔치는 결국 무산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랑의 친구는 신랑이 언제 올지 잘 모르기에 신부의 방 앞에서 신부를 지키고 서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어둠 속에서 신랑의 목소리를 들으면 신랑의 친구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 마칠 수 있게 되었기에 누구보다도 신랑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없이 기뻐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는 곧 자기의 임무를 무사히 완수했다는 안도감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신랑의 친구는 신부를 신랑에게 내어주면서 아쉬운 마음 보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잘 마무리해서 너무 기뻐했을 것입니다. 신부는 당연히 신랑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은 바로 이런 신랑의 친구와 같은 역할을 맡았고, 마침내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오시고 그의 음성을 들었으니 <크게 기뻐하며 자신의 기쁨도 충만하게>(3,29) 되리라는 것입니다. 요한은 이런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이해했고 신부인 이스라엘을 신랑인 예수님께 안전하고 편안하게 인도하면 그것으로 모든 일은,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은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제자들이 와서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3,26)라는 불평과 아쉬움이 스며든 보고를 듣고도 쿨하게 자신의 역할을 담담히 인정하고 뒤로 물러나신 분이십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접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쓸쓸히 떠나가는 스승이신 요한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느껴지는 아쉬움과 떠나가시는 스승의 뒷모습을 보면서 억장이 무너지는 것과 아픔은 어쩔 수 없는 삶의 무정함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러기에 이것이 사람 살아가는 이치며 순리이니 누구를 탓하랴!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아무 미련 없이 오히려 떠나야 할 시간이 왔음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그의 태도가 너무 멋있고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그러기에 이런 세례자 요한의 태도와 마음가짐이 더 커 보이고 대단해 보이는 것도 물러설 때를 알고 스스럼없이 물러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의 경험으로 봐도, 현직에 있을 때 보다 물러난 뒤에 더 빛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 제대로 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신이 무대에서 내려와야 할 때를 알고 주인공이 등장하면 커튼 뒤 어둠 속으로 조용히 사라지는 사람이 바로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고 현명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 시작하는 순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도 참으로 그 자신다움을 잃지 않고 아름다운 물러남을 보여 주었기에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껴집니다. 아울러 요한은 모든 사람이 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한 제자 됨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다시금 세례자 요한에게 유일한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뿐이셨듯이, 우리의 유일한 신랑은 그리스도뿐이시고 그리스도만이 신부를 차지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오실 때까지 깨어 서 있다가 신랑을 온전히 맞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신랑이신 예수님과 함께 기뻐하고 <그분은 더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합니다.>(3,30)고 고백할 수 있도록 합시다.

그리고 우리 네 삶에서 머물 때와 떠날 때를 아는 우리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