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3주일 루가 24, 36~ 48

by 이보나 posted Apr 1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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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길을 가다 보면 <목격자를 찾습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자동차 사고가 그 지점에서 일어났는데, 그것을 직접 본 목격자를 찾는다는 협력 부탁입니다. 그 현수막 밑에는 연락처와 함께 사례금을 주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피해를 당한 가족분들의 애달픈 심정이 그 현수막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경우엔 목격 증인의 진실성과 정확성이 요구됩니다. 긴가민가하는 어정쩡한 태도와 어설픈 증언은 오히려 피해자 가족의 가슴에 또 한 번의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작가 <김승옥>은 그의 단편 <무진기행>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어떤 사람을 잘 아는 체 한다는 것이 그 어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 불행한 일이다>고. 우리가 예수님에 대하여 잘 안다고 말하면서, 삶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묻어 나오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아는 체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 입장에서는 가슴이 아프실 것입니다. 그런 점을 요한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나는 그분을 안다.’ 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 사랑이 완성됩니다.>(1Jn2,4~5) 물론 교통사고 현장이나 범죄 현장의 목격자인 경우는 그 현장을 분명 직접 목격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 부활 증거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경험에는 직접경험과 간접경험이 있듯이 부활 체험의 증언은 간접경험으로도 가능합니다.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언제나 부활을 경험할 수 있고, 그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분명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증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는 선교여행에서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이야기하며, 부활 증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이는 그가 자신의 삶에서 끊임없이 부활을 체험했고, 부활 신앙을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힘주어 증언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시어 다시는 돌아가시지 않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죽음은 더 이상 그분 위에 군림하지 못합니다> (로6,9)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제자들은 이미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로부터 예수님을 보았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마음에 의혹과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에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께서는 <평화가 너희와 함께!> (Lk24,3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짧은 한마디 인사말 안에 제자들이 그동안 겪었던 불안, 슬픔, 절망을 다 알고 계신 주님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용서한다고, 사랑한다고,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이 한마디 말씀에 예수님의 마음이 모두 녹아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의 평화와 다르지요. 참된 평화는 아무것도 부족할 것이 없는 풍족함이나 안락한 상태에서 오는 평화가 아닙니다. 갈등이나 고통이 없는 상태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부활의 평화는 오히려 어려움 가운데, 우리 갈등과 두려움의 한복판에서 솟구쳐 올라옵니다. 부활의 평화는 죽음을 극복한 승리로 얻은 평화이기에 용서와 화해로 시작하며, 예수님과 새로운 관계 맺기, 새로운 질서로 완성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만남의 첫 순간에 인사말로 위로해 주십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예수님을 실제로 보고서도 마치 유령을 본 듯 겁에 사로잡힙니다. 그런 제자들의 반응을 보고서 예수님께서는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24,38~39)라고 하시며 그들의 의혹과 의심을 해소해주려고 애쓰십니다. 극구 당신이 유령이 아님을 증명하시기 위하여 생선 한 토막까지 드시는 장면을 연출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유령이 아님을 입증하려 하신 모습과 몸짓이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그런 노력으로 예수님 사랑의 마음이 제자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마침내 부활의 참된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배신자이자 겁쟁이였던 베드로는 오늘 사도행전을 통해서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이 분명히 보았던 부활 사건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 (사도3, 15)
                                                       

예수님은 음식을 직접 잡수시고 난 뒤, 당신이 겪으셔야 했던 모든 일에 관해 성경을 통해 설명해 주십니다. 이때 주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제자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는 것은 너무도 확실합니다. 부활하여 자신들 앞에 서 계신 주님을 바라보는 제자들의 눈에는 더 강해진 믿음과 굳건한 사랑만이 있었습니다. 부활 신앙의 참된 증인에게는 두 가지 무장이 필요한데, 하나는 성경이요 또 다른 하나는 성체입니다. 예수님께서 성경을 통해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주신 것처럼 우리 역시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성경을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말씀을 통해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은 과거에 말씀하신 게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말씀하시고 계시기에 예수님을 만나서 마음이 뜨거워지고, 뜨겁도록 말씀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지키며 살아갈 때, <그 사람 안에서는 하느님 사랑이 완성됩니다.>(1Jn2,5)고 사도 요한은 강조합니다. 
                                                                                 

부활 증거자가 겸비해야 할 또 다른 덕목은 성체성사에 자주 참여하고 성체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체는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데 절대로 필요한 생명의 영양분이자 사랑의 자양분입니다. 성찬례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그분의 사랑을 보고 만지고 느끼는 자리이며 시간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생명을 먹지 않고는 그리스도인으로써 잘 살 수 없습니다. 내 인생의 여행에 인도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가 어디로 가야하고 어떻게 가야 하는 가를 매일 말씀의 식탁과 성찬의 식탁에서 들려주시고 먹여 주십니다. 주님은 오늘도 당신 말씀으로, 당신 성체로 부활의 기쁨을 만끽하게 해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례를 통해서, 성찬례 안에서 만나고 체험하면서 우리도 역시 부활을 이 땅에서부터 살아야 합니다. 부활은 진정 뜨거운 주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세상을 위하여 투신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의혹과 의심으로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희망 없이 살아가는 이들에게 부활의 희망을 전하면서 그 희망이 실현 가능함을 온몸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 같은 삶이 참된 부활의 증인의 삶입니다. 진정 부활의 참된 목격 증인은 그 부활을 삶으로 사는 자입니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Lk24,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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