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남설악 '흘림골-등선대-오색'

by 후박나무 posted Sep 2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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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설악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등선대로 오르는 ‘흘림골’ 이 2008년 4월 30일 개방되었으니, 처음 그곳을 올라 오색으로 내려 온지도 10 여년이 되어간다. 등선대에 올라 굽이진 한계령과 드문드문 키 작은 소나무가 가까스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던 화강암 봉우리들을 눈여겨 바라보던 때가 어제 일 같다.

 

높다란 암봉위의 바위틈에서 살아가는 소나무는 자연 요즈음 말로 흙수저를 떠오르게 하였다. 사람의 손에 뿌려지던가 아님 바람에 날려 그 자리에 떨어지던지, 우리들 생명은 삶을 어디서 시작할지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사람도 씨앗도 진자리던 마른 자리던 떨어진 그곳에서 습도나 온도등 조건이 맞으면 발아하여 생명을 이어가는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생명이 꽃을 핀후, 사람에게는 식물과 달리 살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할 선택의 자유가 있는 게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生命, 살라는 명령이지만 얄팍한 우리의 심사로는 사는 게 좋고 행복할 때만 살고, 그러지 못할 때는 불평과 원망에 쌓여 사는걸 쉽사리 포기하고자 한다. 사는 것은 절대적으로 젊고 건강하여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어야만 한다는 환상을 부추기는 광고도 한 몫을 한다.

 

그러한 가치관과 환상이 지배하는 곳에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운다” 는 희생의 가치도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자녀의 안녕을 위해 고난을 무릅쓰고 삶을 견디어내는 무수한 부모님들의 고통도 무의미하게 되고, 병고를 통해 삶의 오의(奧義)에 눈뜨는 일도 없을 것이다. 사도 바오로의 말이 상기된다.

 

필립비 1:23 마음 같아서는 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싶습니다. 또 그 편이 훨씬 낫겠습니다. 24 그러나 여러분을 위해서는 내가 이 세상에 더 살아 있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