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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1 20:16

친구 용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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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순연 엘리사벳(서울 글방)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단풍잎을 몇 개 주워

책 속에 끼우면서 너를 생각했다.

젊은 나이에 갑자기 떠나버린 너의 소식을 접 했을 때,

현실이 아니고 꿈이기를 바랐었지.

그러나 이제 많은 시간이 지나고나니,

세상에는 알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구나.

며칠 전 여고 동창회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날 더욱 너의 생각이 났어.

우리는 같은 무용반을 선택해서 하얀 무용복을 입고

하얀 슈즈를 신고 발레리나를 꿈꾸었었지.

 

오늘은 결혼 이후의 나의 삶을 너에게 들려줄게.

형부의 소개로 1978년 1월 14일 결혼을 하고 쭉 서울에서 살았지.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았어. 내가 가장 행복 했던 시절은 아이들 키울 때였어.

잠자는 모습, 웃는 얼굴, 말 배우기 등

조금씩 성장해 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기쁨을 느꼈지.

애들 아빠는 퇴근해서 집에 오면, 양팔로 아이들을 안아 주면서

“내가 언제까지 두 아이를 동시에 안을 수 있을까?”라고 말하면서 웃었지.

그러면 딸아이는 “아빠, 엄마도 안아 줘.” 라고 말 했다.

그럼 다음 차례로 나를 번쩍 안아주고 다 같이 저녁식사를 한

즐거웠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는구나.

 

아이들이 중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는

공부 때문에 모든 대화가 시험 점수에 과한 것들이었어.

그리고 대출 받아서 아파트를 넓혀 갔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웠지.

게다가 시부모님 편찮으시니까 병원에 입원 하시고,

이런 저런 어려운 일들을 많이 겪으면서 부부싸움도 잦았어.

 

나는 스트레스 해소를 주로 성당에서 했어.

성전에서 기도하고 미사하고 동변상련이 있는 신자들과 피정도 함께 다니고

봉사활동도 하면서 힘든 시간들을 극복 했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때가 하느님 사랑 안에서 은총의 시간 이었어.

세상의 행복을 안고 있을 때는 기도와 미사가 개을러지고,

상실감에 흐느적거릴 때 내 곁에서 나를 부축하시는 주님의 팔 힘을 느꼈지.

그런데 남편은 냉담하고, 술 먹고, 담배 피우고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자학하고,

성격이 나빠지기 시작하더구나. 그때 확실히 알았어.

마음이 가난하고, 지치고, 힘들 때에는 꼭 주님의 십자가 아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앞날이 보이지 않는 방황 속에서도,

아이들을 의탁하는 묵주신공을 계속해서 바치면서 긴 시간을 보냈단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이 무난히 대학교에 입학 했을 때,

성모님의 도우심을 깊이 느꼈어.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맘 편한 것은 잠시 뿐,

아들이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입대를 했지.

갈 때부터 제대 하는 날까지 힘든 훈련을 잘 견디고 있는지 걱정 되었다.

어느 날 아들이 제대하고, 엄마! 하고 부르면서 현관문을 들어섰던

그날 그 시간은 정말 기뻤어.

 

미팅이다, 엠티, 동아리활동 등으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즐기던 아이들은

졸업반이 되니까 취업 고민에 빠졌어.

우리나라의 치열한 경쟁력은 옆에서 지켜보기가 안쓰러웠어.

시험에 낙방 할 때마다 오히려 내가 아이들 눈치를 보게 되고

또 남편의 눈치도 보게 되더라고.

집안 분위기는 너무 고요 했고, 마음은 늘 초조 했지.

그러다가 다행스럽게도 딸아이는 교사임용고시에 합격 했고,

아들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원하던 일자리를 잡게 되었단다.

애들 아버지도 공무원인데 아이들이 모두 공무원을 원했지.

그 무렵에 남편이 홍조근정훈장을 대통령으로부터 받았는데

우리가 결혼한 이후 가장 축복을 많이 받은 때였어.

 

아이들이 결혼 적령기에 들면서 짝을 지어야 하는데

기다려 봐도 연애하는 것 같지가 않아서 지인들에게 사윗감 구한다는 소문을 냈다.

그런데 만나는 사람마다 이유를 붙여서 싫다는 것이야.

우리는 오랫동안 신경전을 벌이다가 겨우 결혼 날을 잡았다. 외

인과의 결혼이라 관면 혼배를 하려고 신부님과 상담을 했다.

신부님께서 화를 버럭 내셨어.

꾸리아 간부가 외인 사위를 보다니,

본당에 좋은 총각 놔두고 왜 밖에서 찾았느냐고 하셨다.

난 깜짝 놀랐고 마음이 좀 불안했다.

그렇지만 이미 모든 것이 결정 난 상태라서 결혼은 그대로 진행 되었고,

칸쿤으로 신혼여행을 떠났어.

신혼 방을 꾸미려고 딸아이 방을 도배하고 예쁜 장식품을 사러 다녔다.

마치 30 여 년 전 나의 결혼식 때처럼 흥분되고 들떴다.

나이가 차서 결혼을 했으니 하루 빨리 아기가 들어서기를 바랐다.

그러나 한해 두해 벌써 다섯 해가 지나도록 기다리는 아이 소식은 없다.

 

언젠가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계단을 오르면 숨이 헐떡거렸다.

건강검진을 받으니 관상동맥 협착증이라고 했어.

바로 입원을 했고 스텐트 삽입술을 하고 약물 치료를 받았다.

건강 때문인지 꿈에 예수님을 만났다.

나와 아들이 있는 막사에 예수님께서 오셨어.

목마르구나 하셨다. 깨진 유리잔으로 포도주를 한 모금 씩 나눠마셨다.

꿈에서 깬 후 마치 고난을 예견하는 꿈같아서 두려웠다.

 

아들 결혼이 너무 늦어져서 걱정되었다.

분가하여 독신으로 살겠다고 해서 반대했다.

실랑이를 벌이던 어느 날 갑자기 마음에 쏙 드는 신부 감이 생겼다고 좋아했다.

첫 만남에서 우리는 허락을 했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사돈과의 상견례 때도 친근감을 느꼈고 마치 오랫동안 알던 사이 같았지.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에서 허니문 베이비가 생겼는데 행복을 더 해 주었다.

이제 새해가 밝아오면 우리 집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네.

다음에는 모임이야기를 들려줄게

즐겁고 보람 있는 모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안녕! 너의 벗 순연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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