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動禪

by 후박나무 posted Jan 0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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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숫자에 약한데 세월이 이리 흐르다보니 그 일이 있었던 해가 몇 년도였는지 긴가민가하게 된다. 오래된 사진처럼 기억도 빛바래고 색이 번져 부드러워지면서 평준화의 길에 들어서나보다. 아마도 87년 말이 아니었을까? 동창인 임 신부가 해남본당에 있을 때 둘이 함께 대흥사를 거쳐 두륜산에 올랐던 일이……. 하산 길에 우연찮게 왕인 스님의 암자 “상원암”을 들르게 되고, 인연이 되어 이듬해 1월 한 달간 스님과 함께 머물며 坐禪을 배우게 되었다. 2시간씩 하루 4번 앉으면서 한 달을 지내니, 2번했던 한 달간의 이냐시오 피정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을 한 느낌이었다. 그 후 이제껏 이어진 기도생활은 좌선이 위주였으나, 이제 動禪으로 전환할 때가 된듯하다. 움직이지 않으면 더욱 몸이 굳어지는 병으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하루 2시간씩 4번, 이렇게 3년을 한 뒤에 동선을 한다고 했는데 많이 늦은 편이다.

 

현실에서 오는 고통을 다 느낀다면 살아남지 못할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무의식적으로 마비시켰던 감각과 감수성이 살아나니 성. 프란체스코가 하도 울어 시력을 잃었다는 이야기에 공감이 간다. 영성생활의 첫 단계라 하는 정화란 죄 없는, 깨끗한 인간이 된다기보다 인간이 무엇인지 알고 모든 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세자요한의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 이란 말이 “세상의 고통을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으로 들린다. 세상의 고통을 없애는 방법은 그것을 자신이 끌어안는 것이고……. 십자가의 신비나 통렌기도가 가리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