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기억 - 역사

by 후박나무 posted Feb 0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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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해는 유난히 붉게 떠올랐다. 날이 풀려서 대기의 구성이 바뀌었는지! 연극무대위에 여러 가지 소품이 이미 자리 잡고 있지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추기전엔 제 꼴과 색깔이 없는 그림자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은 것처럼, 하나도 잊지 않고 켜켜이 쌓인 우리네들의 기억도 의식이라는 조명을 받아야 생생히 재생된다. 기억의 치유는 먼저 묻혀 잊힌 기억의 발굴부터다. 그렇다고 아직 대처할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까발려져도 안 된다.

 

박하사탕이라는 영화제목을 보고서야 비로소 거기에 얽힌 기막혔던 지난일이 떠올랐듯, 기억을 재생시키는 방아쇠는 다양하다. 어제는 5살의 나이에 학대를 받다 숨진 ‘준희’ 양의 이야기중, 물집이 잡혀 서지도 못하는 아이를 강제로 세우고 넘어지자 발로 밟았다는 보도가 그러했다. 내 몸 구석구석의 근육은 그런 기억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고 늘 경직되어 있기 마련이겠다.

 

비정한 친부와 계모가 아이를 죽인 것과는 달리 가나안 부인의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둘 중 하나만 있다면 세상을 요지경속이라 하겠는가? 삶이란 여러 면에서 샘에서 발원하여 여러 다른 물과 섞여 바다로 흘러드는 강과 같다. 교우 개개인의 삶도, 유다-그리스도교 신앙도 역사적으로 일별하면 거의 같은 양상을 볼 수 있다. 출애굽의 구세주 하느님 - 가나안 지역에 정주하면서 그 지역의 토착 신이던 바알신의 면모를 받아들이는 토착화(창조주) - 출애굽의 하느님과 신앙의 순수성을 잃었다고 일갈하는 예언자들 – 정치, 경제, 종교적 독립은 물론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왕족과 정치집단들 – 배고파 못 살겠다, 죽기 전에 살길 찾자는 민중들. 강물 속으로 강이 흘러가듯 다양한 흐름 속에서 오늘 ‘머믐없이, 애씀 없이’ 살아가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어쩌면 너무 지혜롭던 젊은 날의 솔로몬보다 눈이 어두워진 만년의 솔로몬과 유사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