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88년이나 89년일 게다. 당시 한국의 고난회는 시카고 성. 십자가 관구의 지부였으므로 관구장인 세바스챤 신부가 방문하여 종신서원 자들과 개별면담을 했었다. 나는 그때 서울 명상의 집 피정지도자로 일할 때였으므로 과중한 업무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였던 기억이 난다. 면담 말미에 세바스챤 신부님이 나를 보고 웃으며 “지금 행복하냐?” 고 물으셨다. 그때 얼핏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행복한지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사실 나는 그런 물음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으므로 행복한가보다고 답하고 같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80이 훌쩍 넘은 고령이신데도 루이빌에서 건강하게 사신다는 소식이다.
낙원과 실낙원. 보통 사람들은 낙원을 잃은 후에야 거기가 낙원이었음을 깨닫는다. 옛 사진들을 찾아 찬찬히 들여다보아도 어머니 살아생전의 얼굴과 몸짓에는 구김살이 없다. 그러던 것이 급전직하, 매우 불행한 얼굴로 바뀌고 만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불행했던 여인, 주변 사람들까지도 불행하게 했던 그 사람이 불쌍해진다.
거의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행복했던 순간이 있다. 그것은 초등학교 6학년 우리 집 정원에 라일락이 만개하던 날 저녁이었다. 4형제가 라일락 향속에 같이 앉았던 추억이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모른다. 아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 있었던 것 같다. 아마 모르긴 해도 저마다 지난 11년의 고초를 반추했을 수도……. 그 불행했던 사람을 화장하여 보문사에 의탁하고 왔으므로 나는 더 이상 불안과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낮에 어른들이 있을 때는 표정관리가 필요했다. 그렇게 4형제가 모인 것이 얼마만인지…….그 불행한 여인은 갔지만 내안에 11년 동안 내면화된 그 여인의 압제와 학대에서 벗어나는 건 또 다른 난제가 될것이었디. 하지만 그날 저녁 노을은 그냥 고왔다.
후일 나의 행복은 마음이 깨끗해져 하느님을 보는 것이 되었다. 지금 와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은 소란하고 혼란스럽기까지 한 여러 층의 마음을 꿰뚫고 본질을 직시하는 관상기도에 다름 아니었다.
발가벗기 운채 가슴에선 피를 흘리며 빙산에 앉아있던 그 아이, 섣불리 손을 내미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아이를 바라보는 것! 寂靜이나 寂滅이 그 아이를 변화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