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냥이

by 후박나무 posted May 0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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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계속 요한복음을 읽으면서 부제 때의 일을 회상한다. 범 선배 신부님이 요한복음에 관한 좋은 논문을 하나 소개해 주시면서 번역을 부탁하셨다. 부산교구 심순보 신부랑 둘이 공동으로 번역하여 ‘신학전망’에 싣고 고료를 받아 광주 갈빗집에 갔던 일……. 그 논문은 요한복음이 공관복음과 하도 달라 “이단적인 복음‘ 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라 하였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요한이 그리는 예수님은 ”땅위를 걸어 다니신 하느님“ 이라는 표현이다. 영과 육, 빛과 어두움, 썩어 없어질 양식과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등 많은 경우 삶을 이분법적 표징으로 나눈다.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사물이 그렇게 명료하고 분명하게 나누어지진 않는다. 베네치아의 상인에서처럼 샤일록은 피와 살을 구분하여 살만 1파운드 취할 수 없었다. 또 썩어 없어질 양식과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이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누군지 말 못할 사정으로 젖도 떼지 못한 고양이 5마리를 우리 집에 버리고 갔다. 우여곡절 끝에 한 녀석은 행방불명, 또 한 녀석은 오늘 아침 하늘나라로 가고 3마리를 보호하고 있다.

 

매 2~3 시간마다 초유를 먹이자니 불편한 몸으로 이게 보통일이 아니다. 매번 적당한 온도로 덥혀 일일이 입에 꼭지를 대고 눌러주고, 소변도 어미가 있으면 핥아서 보게 할 터인데 그렇지를 못하니…….마치 노래가사처럼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뭍이요? 주변에 돌아다니는 개들에게 해코지라도 당할까 신경은 곤두서고 초유 먹이랴 눈 치료해주랴 용변까지……. 이렇게 먹이는 양식은 썩어 없어질 양식이면서 동시에 영원한 생명을 주는 음식이 아니겠는가! 조금만 생각해봐도 우리 모두 그렇게 누구에게든지 신세를 진 덕에 살고 있지 아니한가! 그 생명 안에는 당연히 영원한 생명이 깃들어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