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샌드위치

by 후박나무 posted Jul 0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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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동 공동체의 구성원들도 나이가 들어가니 예전 같지 않게 시름시름 아픈 사람이 많아진다. 성당에 앉았다가 일어서기라도 할라치면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절로 난다. 공교롭게 요즈음 읽는 복음도 치유를 언급하니 공감이 많이 간다. 희랍정교회는 그리스도교의 목적과 사명을 원죄로 손상을 입은 인간의 NOUS를 치유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누스는 인간이 갖는 여러 능력중 정신 심리적 능력인데 지적이고 논리적 영역이 아니라, 영적인 감수성의 영역이라고 하겠다. 원죄로 인해 손상을 입은 영적 감수성을 치유한다 함은 본래의 민감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오늘 복음은 마르코 복음사가가 잘 쓰는 샌드위치식 구문이다. 야이로 회당장과 그 딸의 이야기 사이에 하혈하는 부인의 이야기가 끼워져 있다. 샌드위치에서 좀 더 중심적인 것은 가운데의 내용물이듯이, 회당장의 이야기는 말하자면 1차적인 몸의 치유만 다루고, 하혈하는 부인의 이야기는 몸의 치유와 함께 NOUS 의 치유까지 다룬다.

 

하혈하는 여인은 자신의 몸이 나았음을 자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예수는 여인의 치유가 단순히 병이 나은 것으로 그치지 않게, 여인으로 하여금 병이 나은 지금의 시점에서 지난 12년의 세월을 되돌아보게 한다. 병이 낫기 직전까지 여인에게 지난 12년은 잃어버린 세월이었을 게다. 그러나 이제 병이 나은 지금의 시점(부활체험을 한 후의 관점)에서 다시 보게 되는 지난 12년은 잃어버린 세월이 아니라 바로 지금의 영광을 위해 겪어야만 했던 사건으로 변모된다. 파편화 되어있던 그녀의 삶은 다시 한 번 중심을 갖고 통합되어 의미가 충만하게 되는 것이다.

 

장자 내편 소요유에 “아침 버섯은 그믐과 초하루를 모르고 매미는 봄과 가을을 모른다”는 구절이 있다. 며칠만 존재하는 버섯은 한 달이라는 기간을 알지 못하고 여름 한철만 존재하는 매미는 봄과 가을이라는 계절을 알지 못한다. 버섯과 매미에게 믿음이 필요하듯 100년을 못사는 우리들도 사정은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