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앞에서는 모두가 살아있다. 비오 수사님 기일이다. 마 신부님, 박도세 신부님, 비오 수사님 우리들 모두가 하느님앞에 살아있기를 빈다.
철이 들고 나서야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 중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이란 구절이 절창이 되었다. 그렇게 거울 앞에 서는 것은 적절한 거리를 갖고 돌아보는 관조일 수 밖에 없을 테고 그럴 수 있기까지 얼마만한 일을 겪어야만 했을지 능히 짐작이 갔다.설직의 추조람경 이미지까지 겹치니 자못 의미심장했다고 할까.
나이가 들어가고 병까지 생기니 돌아보는 일이 잦아진다. 해마다 오르던 설악산행도 돌아보면 사람과 사람이 만든 것으로 이뤄진 세계를 떠나 그 너머의 세계에 갔다 다시 귀환하는 여정이다. 두 세계 사이의 경계영역에 머무는 시간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감수성과 시야가 회복되는 시간이거나 다시 귀환할 세계에 적응하는 시간이었다. 아마 새로운 관점이나 인식, 열린 마음은 그 지점, 경계영역 경계시간에서 동이 터오는 것 같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다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거기서 가능할 것 같다.
숫파니파아타 자비경중
살아있는 생물이면 어떤 것이건
예외 없이, 약하건 강하건,
길건, 크건 중간치건
또는 짧건, 미세하건 거대하건
눈에 보이는 것이건 안 보이는 것이건
멀리 사는 것이건 가까이 사는 것이건
태어난 것이건 태어날 것이건
살아있는 모든 것은 행복하라!
어디서건 그 누구건
아무도 속이거나 헐뜯지 말라
원한에서건 증오에서건
아무도 남들이 해롭기를 바라지 말라
마치 어머니가 위해로부터
외아들을 보호하려고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처럼
살아있는 모든 것을 위해
모든 포용의 생각을 지켜내라
온 우주 구석구석까지
그 높은 곳, 깊은 곳, 넓은 곳 끝까지
모두 감싸는 사랑의 마음을 키워라
증오도 적의도 넘어선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는 사랑을
서거나 걷거나 앉거나 눕거나
깨어있는 한은
이 자각을 힘 다해 수행하라
그것이 세상에서 신성한 경지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다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마음에 그치지 않고 지극하기에 하느님은 사람이 되었다. 비 맞는 사람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는 것은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비를 맞는 것이라 한다.
같은 이치로 살아있는 모든 것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이해하고 믿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