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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 가브리엘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복음 사색

하느님의 아들

by 후박나무 posted Jan 0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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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가까스레 몸을 추슬러 며칠 만에 집을 나서다. 우이령까지는 무리라 3분의 2 지점까지 갔다가 돌아와 미사주례를 하다. 손과 팔에 힘이 들어가질 않으니 자꾸 경련이 일어나듯 떨린다. 그러잖아도 짧다는 이야기를 듣는 미사인데, 이래저래 더 짧아진다.

 

신약성서는 그리스 어로 쓰인 저작물중 그 작품성이나 문학성 측면에서 그리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들은 아니다. 하지만 루카복음, 그중에서도 ‘엠마우스’ 이야기는 예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오죽하면 이런 말이 있겠는가? “엠마우스 에피소드는 사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아름답고, 사실이 아니라 하기에도 너무나 진실하다.” 마태오 복음의 ‘동방박사’ 이야기를 보완하여 하느님이 사람이 되었다는 강생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체득케하는 “넷째왕의 전설” 도 그런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보다 넓은 지평에서 보자면, 어린 시절 우리는 저마다 이상이라든가 말 못할 동경이 있었고 별을 바라보듯 그것을 마음에 품고 살았다. 안타깝게도 우리들 대부분은 나이가 들면서 어린 시절 가졌던 자신의 이상이나 동경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정신없이 살면서 자연스레 별을 잊게 되고 아주 가끔 꿈 많던 시절을 돌아보며 회한에 젖곤 한다. 이런 현실에서 동방박사의 이야기는, 누구든 자신의 동경이나 이상을 충실히 따른다면 그것은 결국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여 주리라는 이야기로 들린다. 동방박사 이야기는 그 하느님이 하필이면 한 인간 예수에게 온전히 육화하였다는 그리스도교 신앙고백이다.

 

동방박사 이야기를 보완하는 “넷째왕의 전설” 은 하느님이 강생하여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를 궁구한다. 마르코 복음을 따라 공관복음인 마태오와 루카 모두 “하느님의 아들” 이라는 말이 3번 나오는데 두 번은 하늘에서(세례때, 타볼 산에서) 들려오고 한번은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로마인 백인대장(십자가 아래 서 있던) 의 입을 통해서다.

 

하늘에 나타난 별을 보고 새로 나실 왕에게 인사를 하고 예물을 드리고자 길을 떠난 사람은 동방박사 3인 외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의 작은 나라의 왕인 넷째 왕이 그였다. 그런데 동방박사와는 달리 넷째왕은 별을 따라가다 만나는 사람의 필요에 응하다 보니 별도 잊어버리고 가져왔던 선물도 여비도 탕진하게 된다. 빈털터리 신세로 어떤 항구도시로 들어갔던 넷째 왕은 빚돈에 팔려가는 과부의 외아들을 보고, 자포자기 하는 심정도 있고 과부가 불쌍한 마음도 들어 자신이 대신 노예선을 타기로 한다. 30여년의 우여곡절 끝에 늙고 병든 넷째왕은 노예선 에서 풀려난다. 결국 그는 태어날 때 인사를 드리고자 했던 분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에야 비로소 그분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십자가 아래에 선 그에게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던 좌절과 모순, 회한과 분노가 잦아들며 여명처럼 깨달음의 시간이 온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이런 세상에서 산다면 이분처럼 살다가, 이렇게 죽을 수밖에 없겠구나! 이렇게 죽을 수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끝까지 그 길을 가서 자신을 제물로 바쳤구나! 그래서 하느님의 아들이구나!

 

넷째 왕이 별을 따라 길을 떠난 후 별을 잃어버려가며 겪었던 여러 체험들이 없었으면 넷째 왕도 십자가를 둘러쌓고 야유를 퍼붓던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으리라.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렴. 그러면 믿겠다.” 고 하는 군중들과…….“   네쩨왕은 표면적으로는 별을 잃어버리고 방황하였으나, 그는 진정 자신도 모르게 별을 따라갔고, 그 별은 마침내 그를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로 인도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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