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성서의 알레고리적 해석

by 후박나무 posted Nov 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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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날이 살날보다 많아지면 지난 일을 떠올리는 시간도 많아진다더니 자주 실감한다. 오늘 아침 루카복음을 읽으며 로마 유학시절 교부학 시험 준비를 하던 일을 생각하다. 아우구스티누스 회 수사신부였던 교수가 시험을 위해 필수적으로 읽어야한다고 주문한 문헌만 700 페이지가 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외국어로! 그렇게 밤낮으로 읽고 시험보고는 콩나물시루에 준 물처럼 다 아래로 빠져버린 듯 하지만 남는 것도 있더라.

 

신학대학생 시절만 해도 새로 도입된 과학비평- 역사비평, 자료비평, 전승사비평, 양식비평-이 성서해석학의 주류를 이루고 과거 교부시대부터 이어오던 우의적, 은유적(알레고리) 해석은 매장당하는 듯 했다. 하지만 溫故而知新 이라고 세월이 더 흘러보니 알레고리적 해석은 사라진 게 아니더라. 오히려 그러잖아도 지나치게 합리적이어서 빡빡한 현실도 모자라 하느님 말씀이라는 분야까지도 메마르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반감에 복고적인 경향도 적잖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오늘 루카복음 해석을 읽으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번진다. 침상에 누워있는 두 사람, 맷돌을 돌리는 두 사람, 밭에서 일하는 두 사람(이것은 루카본문에는 나오지 않는다), 은 각각 수도자와 평신도 그리고 성직자를 우의적으로 나타낸다. 침상에 누워있는 사람은 조용하므로 수도자, 세상은 방앗간처럼 쉬지 않고 돌아가니 맷돌을 돌리는 자는 평신도, 고린토1서 3:6 “나는 씨를 심었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처럼 밭에서 일하는 자들은 성직자. 수도자나 성직자라 해서 다 선한 것은 아니다. 평신도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선택되거나 버림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