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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 가브리엘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복음 사색

삶의 속도

by 후박나무 posted Nov 1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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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민속학자 한 분이 아메리카 원주민 나바호족의 민담을 채취하고자 그들의 공동체에 들어가 얼마간 같이 생활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성서가 쓰인 시대의 생활리듬과 현재가 얼마나 다른지 그 간극을 통찰케 하고자 함이었다.

 

나바호족의 삶의 리듬은 그들의 생활에 아주 중요한 한 축인 들소 떼의 움직임을 따라 전개되었다. 사냥이 가능한 젊은 전사들이 먼저 말을 타고 들소 떼를 따라가고 노약자와 여인, 어린이들은 가재도구를 들고 걸어서 따라갔다. 그들은 그렇게 해마다 같은 길을 반복하여 걸으며 지나는 길에 있는 기이한 바위 같은 모뉴먼트나 고갯길등 기타 독특한 풍광에 얽힌 그들만의 이야기를 어린이들에게 해 주무로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전통과 문화, 가치를 전승하고 있었다.

 

민속학자도 그렇게 나바호족의 원로와 함께 가며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갈수록 이야기의 속도가 걷잡을 수 없게 빨라져 노인은 숨이 차고 거품을 뿜을 지경이 되었다. 민속학자는 나중에야 사실을 알게 된다. 나바호족은 걸어서 갔으므로 시속 4키로 정도의 속도였고, 길을 가면서 나타나는 여러 모뉴먼트에 얽힌 이야기의 배치도 그 리듬에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민속학자는 자신에겐 당연하게 나바호 원로를 지프차에 태우고 달렸던 것이다. 그러니 도보속도인 시속 4키로 에 맞추어 전개되던 이야기가 적어도 5배는 빠르게 다음에 할 이야기에 얽힌 풍광이 다가오니 입에 거품을 물 정도로 바쁠 수밖에!

 

아일랜드에 있을 때 하루는 더블린 시내에 나와 나의 취미생활중 하나인 헌책방 순례를 했다. 그리고, 그 유명한 E. F. Schumacher(Ernst Friedrich Schumacher) 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 A Study of Economics As If People Mattered)를 만나다. 하도 많이 인구에 회자되어 많은 사람들이 읽은 것으로 치부하나 사실상 그렇지 않은 이 책은, 독일출신 경제학자 슈마헬이 쓴 에세이를 묶은 것이다. 앞에 인용한 미국 민속학자가 진정 나바호족의 문화나 가치를 배우고자 한다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지프차에서 내려 걷는 것일 게다. 우리시대의 속도인 시속 100키로의 관점과 가치를 갖고 나바호족의 민담을 듣는다면 왜곡밖에 나올게 없다.

 

과부의 전 재산인 렙톤 2잎의 가치를 알아보고 높이 평가할 수 있으려면 먼저 “작은 것이 아름다움”을 배워야 할 것이다. 정작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 많고 큰 것이나, 고급 기술이 아니라 적정한 수준의 기술임을! 대형마트들이 동네의 구멍가게들을 다 고사시키듯 반포 사랑의 교회처럼 어마어마한 교회는 지역교회의 다양성을 말살시킨다. 대형교회 예찬론자들이 과부의 렙톤 2잎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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