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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 가브리엘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복음 사색

한 겨울

by 후박나무 posted Jul 1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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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사계가 있듯이 인생에도 4계가 있다. 나름대로 내심 인생의 가을 혹은 늦가을을 지나고 있으리라 간주하다 예상치 못했던 파킨슨 증후군이란 병이 드는 바람에 갑자기 삶의 모든 환경이 가을에서 한 겨울로 변하고 말았다. 그리 힘을 들이지 않고 일상으로 하던 일들이 애를 써야하는 힘든 일이 되었다. 옷을 갈아입고 세탁을 하고 널고 걷어 들이는 일, 매일 세수하고 머리 감고 샤워하는 일, 잠깐만 일해도 몸이 땅에 들어붙을 듯 피곤해지는 상태, 떨리는 손으로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리는 일, 걷는 것, 식탁에 앉아 밥 먹는 일 그리고 청소!  방 청소나 책정리는 보통때도 않하던 것이니 별 문제는 없다^^  일상이던 많은 일이 뭔가 애를 써서 해야만 하는 일로 변했다.

 

Elisabeth Kübler-Ross는 최종적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5 단계로 정의했는데 별로 신통치 않다. 1단계(부정), 2단계(분노), 3단계(타협), 4단계(우울), 5단계(수용)로 분류하는데 본인의 수양이나 인생관에 따라 몹시 다를 것 같다. 일찌감치 죽음을 깨닫고 삶의 허무를 극복해보고자 하는 와중에서 부활체험을 하고 시작한 수도생활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몹시도 자기중심적인 시선으로 보기에 시한부 인생이라는 선고라도 받으면 즉시 나오는 응답이 “하필이면 왜 나인가?” 라고 분노한다고 한다 . 적어도 나는 “왜 하필이면 내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라고 물을 수도 있는 여백을 가졌었다. 하지만 사도 바오로의 말처럼 육신을 지닌 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할 때의 태도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겉으로 드러나는 삶의 모습이나 마음의 표피적 차원에선 부정이나 분노가 느껴지지 않으니 타협할 일도 없지만, 가끔씩 안하던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어떤 삭혀지지 못한 분노가 심층깊이 잠재해 반항하는 것도 같다. 병에 걸리지 않았을 때도 밝은 사람은 아니었으니, 지금도 우수는 충실한 동반자다.

 

발병한지 3년, 전반적으로 평소 삶을 “인생만사 새옹지마” 로 이해하였기에 이 병도 말을 잃어버린 사건으로 혹은 말을 타다 떨어져 불구가 된 케이스로 본다. 돌아가신 박 도세 신부님이 자주 하시던 말씀처럼 인생의 일이란 항상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신앙생활이 지향하는 바도 淨化되고 深化된 “人生萬事 塞翁之馬”라 생각한다. 조만간 끝나리라 예상되는 이 겨울을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세례명과 수도 명을 바탕으로 나의 신원(身元)을 유추해 보자면 먼저 그리스도교 최초의 은수자인 이집트인 바오로의 생활양식과 고난회 학생들의 주보성인인 가브리엘 포센티의 性情을 융합해봐야 한다.

 

답이 나올 것도 같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현양(顯揚)받으실 때가 되자 세상에서 사랑하던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Bucket List (버킷 리스트-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처럼 뭔가 색다른 일을 중뿔나게 하려 하지 말고 이제껏 해오던 일을 정성껏 하는 게 마무리를 잘 짓는 일이겠다. 은수자로서 기도하며 책을 통해 하느님을 찾는 학자로 마지막까지 살수 있다면 좋은 일이겠다. 물론 이것은 교과서적인 정답이고 실제의 삶은 신비의 영역이므로 단순한 희망사항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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