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가 의도하는 것은 자신과 세자요한, 자신의 제자들과 세자요한의 제자들을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들 마냥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그 세대 사람들의 우유부단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시적인 표현이 잠언에도 보인다. 1:20 “지혜가 길거리에서 외치고 있다.” 9:2~6 “지혜가 잔치 상을 벌렸다” 지혜: 하느님의 구원계획. 마태오는 지혜를 예수와 동일시하나 루카는 자의적으로 지혜를 29절, 세리와 죄인들과 연관 짓는다. 29절과 35절 사이에서 그들은 ‘목적’ 과 ‘지혜’ 에 병행하여 두 번 ‘정당화 된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이것이나 저것 모두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 대부분 자신이 자기를 인정하지 못하고, 못마땅하게 여길 때 그러하다. 자기 자신과 평화롭게 지내지 못하는 사람이 이웃과 세상과 화합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