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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 가브리엘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복음 사색

Finalmente Tornato!

by 후박나무 posted Jul 0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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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일간 계속되던 예비총회 마지막 날이다. 점심때쯤 인도네시아의 총 참사위원 사비누스가 도착했다. 로마유학시절 내 방이 casa 24 였고 사비누스 신부의 방이 바로 옆 casa 25 였었다. 2006년 로마총회 관련 문건을 찾다가 오래된 메일에서 아직도 삭제되지 않은 사진도 보게되다. 귀국한 후 15년만에 돌아온 감회를 적었던 글도.

 

2006. 9. 28 Finalmente Tornato! Finally I returned!

 

1990년 처음 로마로 유학 가던 시절에 가던 길을 되짚어 로마로 돌아갔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중국과 러시아 영공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지요. 루푸트 한자와 에어 프랑스가 같은 조건이었는데, 이왕이면 30대에 유학을 떠나 가던 길을 되짚어 가고 싶어서 에어 프랑스를 선택했었지요.

 

베이징의 북쪽으로 해서 울란바토르, 옴스크, 서부시베리아, 우랄을 넘어 키로프 빼쩨르부르그, 헬싱키가 있는 발틱해를 거쳐 독일로 들어와 파리에 착륙했어요. 그 옛날과 동일하게 파리에서 로마까지는 알 이탈리아더군요.

 

후무치노 공항에 도착했는데 마중 나온 사람이 없어 한동안 기다리다가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주세뻬와 루이지가 시내교통이 밀리는 바람에 늦었다고 하더군요. 여기 저녁식사는 8시. 14년 전에 계시던 분들이 많이 안보이고 사람도 줄었더군요. 약간은 텅 빈 대식당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분들과 인사를 나누면서도 이렇게 세월이 흘렀구나 하는 감회가 깊더군요. 그래 이렇게 나이가 들고 늙고 떠나가는구나! 다만 우리가 떠나가도 그 자리를 메울 후배가 없다는 것이 아쉽군요.

 

전에는 홀에 자리가 없어 사이드 좌석까지 앉아서 식사를 햇는데, 이제는 홀의 식탁도 많이 비더군요. 그나마 지금은 총회라서 각 관구의 관구장과 대표자들이 와서도 이정도지요. 있는 사람도 정말 몰라보리만큼 많이들 늙었고요! 아마 사돈 남 이야기 하는 거겠지요. 저도 이렇게 늙었으니까요!

 

2006. 9. 29 05:00

 

Jet-rag 때문이기도 하고 젊었던 시절 한 때 몇 년간 땀을 흘리던 곳이기도 해서인지 오랜만에 돌아오니 감회가 깊기도 하고 해서 새벽 한 시에 일어났습니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는 말과는 달리, 고색창연한 지오반니 빠올로 바실리카(Giovanni e Paolo Basilica) 와 거대한 수도원건물, 정원의 큰 소나무들은 그대로인데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오반니 빠올로 바실리카의 터줏대감 같으셨던 후라뗄로 루이지 , 포도주를 담당하시던 마르첼리노 수사님, 포도주 더 안준다고 땡깡을 부리던 쬬아키노 신부님, 선교지역 담당이시던 에피파니아 신부님과 리노 신부님, 간호사였던 사베리오 수사님……. 아! 너무도 많은 분들이 떠나셨네요. 이곳에서 공부하던 시절 홀에 자리가 없어 벽 쪽의 사이드에 앉아서 식사를 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홀의 식탁도 여기 저기 비어져있습니다. 빈 홀만큼이나 그를 바라보는 마음도 허전하군요.

 

새벽에 정원을 걸으면서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비록 Fontana di Trevi에서 돌아서서 동전을 던지지도 않았지만 다시 돌아오게 된 로마, 어린왕자의 한 구절과 같이 어떤 사람이 아니면 어떤 장소가 소중해지는 것은 그것으로 인해 기뻐하고 아파한 시간이 많기 때문인가 봅니다. 이곳에 다시 오니 여기서 보낸 30대의 학생 신부 때의 일들이 생생히 떠오릅니다. 어제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이곳이 이렇듯 제 마음에 남아있는지 몰랐는데요. 이효석의 청포도의 사상에서처럼 그 기억들이 이리도 애틋하고 소중하게 마음을 아리게 하는 것은 그때 함께 살았던 사람 중 많은 이들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인가 봅니다.

 

오늘은 제가 공부하던 안젤리꿈(Angelicum) 대학과 자주 다니던 장소를 혼자 더듬어 보고 싶습니다. 지난 세월을 반추하는 거지요.  결국은 모두 다 돌아가는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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