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박태원 가브리엘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복음 사색

성 유스티노

by 후박나무 posted Jun 01,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성.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이다. 작고하신 박도세 신부님의 영명축일이기도하다. 6월 첫날이 영명축일이어선지 박 신부님은 유난히 장미를 좋아하셨다. 끝은 시작을 의미하니, 토마스 모어의 시를 장미꽃으로 드리고 싶다.

 

https://youtu.be/OzYUvAytrgI

 

Thomas Moore (1779-1852)

'TIS THE LAST ROSE OF SUMMER

 

'TIS the last rose of summer,

Left blooming alone ;

All her lovely companions

Are faded and gone ;

No flower of her kindred,

No rose-bud is nigh,

To reflect back her blushes,

Or give sigh for sigh.

 

I'll not leave thee, thou lone one !

To pine on the stem ;

Since the lovely are sleeping,

Go sleep thou with them.

Thus kindly I scatter

Thy leaves o'er the bed,

Where thy mates of the garden

Lie scentless and dead.

 

So soon may I follow,

When friendships decay,

And from Love's shining circle

The gems drop away.

When true hearts lie wither'd,

And fond ones are flown,

Oh ! who would inhabit

This bleak world alone ?

 

여름의 마지막 장미
- 토마스 모어


홀로 남아 피어있네
사랑하는 그의 벗들
모두 지고 없는데
 

 

얼굴의 홍조 서로 비춰주고
탄식을 나눌
이웃 꽃들도
장미 봉오리도
이제 모두 사라지고 없구나.
 
 

가지 위에서 그리워하며
홀로 남은 그대,
난 그대 곁을 떠나지 않으리.
사랑하는 이들 모두 잠들어 있으니
그대도 가서 그들과 같이 잠들어요.

그대 벗들이 떨어져
향기도 잃고 잠들어 있는 화단에
이렇게 그대 이파리
정성스레 흩뿌려 줄테니

 

이제 친구들이 스러지고,
빛나는 사랑의 원에서
보석들이 떨어져 나갈때
나도 곧 따르리

 

진실한 친구들이 시들어 잠들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면
아! 누가 이 황량한 세상에
혼자 남아 살아갈까?

 

작고하신 신부님을 회상케 하는 시다. 벌써 32년이 흘렀다. 박도세(Justin Bartozek) 신부님과 함께 성. 십자가 관구의 총회에 참석키 위해 디트로이트로 출발하던 때가. 흐르는 것이 어디 세월뿐이랴! 박 신부님은 떠나신지 이미 오래고, 세월 또한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당시 한국 예수고난회는 종신서원자가 총 9명으로 모관구인 성. 십자가 관구의 지부였다. 박도세 신부님은 지부장이었으므로 당연직 대의원이었고 나는 투표로 대의원으로 선출되어 디트로이트 총회 참석차 미국에 가게 되었다.

 

당시에는 몰랐으나 지금 돌아보면 박도세 신부님은 나에게 많은 기회를 주셨던 것 같다. 지금은 훨씬 쉬워졌지만 당시엔 미국 비자를 발급받기가 아주 어려웠다. 영사관 직원과 몇 시간을 씨름하다시피 하여 비자를 받게 한 것은 물론 총회가 끝나고 3달이란 긴 기간 동안 미국의 두 관구, 뉴욕관구와 시카고 관구에 속한 큰 수도원을 거의 다 방문케 하셨다. 하와이에는 우리 수도원이 없었으나 당시 친구였던 메리놀의 유수 수녀님이 계셨으므로 거기도 들러오게 허락하셨다.

 

디트로이트 총회후 거의 미국 전역을 돌며 고난회 수도원을 둘러보았다. 보통 한 수도원에서 하루나 이틀 머물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다음 수도원을 방문하고. 루이빌에서는 토마스 머튼이 머물던 트라피스트 거세마니 수도원도 방문할 수 있었다.

 

3달에 걸친 미국 수도원 방문을 통해 받은 문화적 충격도 컸고, 엄청난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하는 생활양식을 보며 나는 미국에서 공부하지 않겠다는 결심도 하게 되었다. 학문을 배울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들의 생활양식을 배울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내게 가장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미국의 수도원들을 돌아보면서 나는 나의 미래를 미리 보게 된 것이다. 그런 전조는 수도원 방문을 시작하기 전 총회 때부터 있었다. 그러기에 디트로이트 총회를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무엇이라 하겠는가라는 설문지에 나는‘surviving’ 이라 썼었다. L. A, 샌. 프란시스코, 사끄라멘토, 시카고, 디트로이트, 세인트루이스, 루이빌, 뉴욕 자마이카, 코니아일랜드, 워싱턴 DC, 휴스턴, 시에라 마드레, 하와이등을 다니면서 줄곧 우울했었다. 수도원 방문이 아니라 양로원을 순례하는 기분이었다. 후배들이 없이 자기들끼리 늙어가는 그 모습에 내 미래가 투영되었다. 이 문제는 미국에서 돌아와 3달 정도 후에 쓴 “화려한 십자가” 로 일부 해소되었지만 아직도 마음에 품고 있는 알이다. 머지않아 나도 이사야처럼 말할 수 있기를!

 

이사야 49:4 그러나 나는 생각하였다. "나는 헛수고만 하였다. 공연히 힘만 빼었다." 그런데도 야훼만은 나를 바로 알아주시고 나의 하느님만은 나의 품삯을 셈해 주신다.


  1. 물처럼 바람처럼

    지난 토요일 밤 10시경 동기인 마티아 수사의 어머님이 선종하셨다. 3주전부터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라 갑작스럽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부고를 듣게 되는 마음은 헛헛하다.   평생을 동굴에서 한 방향만 보도록 묶여 생활한다는 플라톤의 비유...
    Date2019.04.29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51
    Read More
  2. 성. 토마스 기념성당

    아마 90년대 후반 즈음일 터……. 인도의 방갈로에서 회의를 마친 후 마 신부님이 사목하시는 남부의 코친에 들렀었다. 그때가 나로서는 3번째 인도 방문이었다. 뭐 흔히 하는 말로 인도를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고. 그만큼 매...
    Date2019.04.28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87
    Read More
  3. 교도소

    어제 치과에서 의치를 만드느라 한 시간 가까이 이를 갈아댄 여파인지 어쩐지 오늘은 새벽 1시에 깨어 꼬빡 밤을 새었다. 요한 23세 께서는 당신의 만년 저널에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태어나기에도 죽기에도 좋은 날이다” 하셨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
    Date2019.04.26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82
    Read More
  4. 정지용의 '고향'

    예년보다 거의 일주일이나 빨리 온 더위로 꽃들이 절기에 맞게 순서대로 피는 게 아니라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피고 바쁘게 져 버린다. 꽃들도 마치 ‘바쁘다 바빠’ 하는 듯하다. 오늘 아침 미사후 거의 2주 만에 우이령을 오르다. 우이령은 그래도 높이가 있어 ...
    Date2019.04.24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50
    Read More
  5. '갈릴레아로 가서 다시 시작하라!

    한 주간이 조금 넘게 광주 수도원에 머물다 오다. 그동안 성. 삼일 전례와 연례피정 강사도 하고! 아무리 KTX를 타고 다닌다 해도 여행은 여행인가보다. 차를 타는 시간은 단축될지라도 몸이 받는 피로감은 동일한 것 같다. 21일 상경한 후 22일 다시 아산병원...
    Date2019.04.23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98
    Read More
  6. 엑서더스

    이집트의 은수자 바오로라는 내 영세명처럼 두메꽃으로 살고자 수도원에 왔는데, 어째 이곳이 산 아래 저자거리보다 더 번다하다. 꽃이야 어디에 피든 누구에게 보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자신을 표현하니 모든 꽃이 두메꽃임은 알겠다. 저자거리...
    Date2019.04.20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75
    Read More
  7. 성 금요일

    https://youtu.be/fcWo1hKHu40   오늘 성 금요일 십자가 경배는 "Miserere mei, Deus"를 들으며 시작했다. Gregorio Allegri(1582-1652) 가 다윗의 참회시인 시편 51에 곡을 붙인 것으로서, 성주간 동안 시스티나 성당에서 5부 아카펠라 합창단이 부르는 성가...
    Date2019.04.19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62
    Read More
  8.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과 이명박의 '대통령의 시간'

    20대 전반에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었다. 페이지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자신을 가감 없이 드러내던 그 용기와 진실성에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동시에 나는 아마 나이 들어서도 평생 ‘고백록’ 이라든가 ‘회고록’ 혹은 ‘자서전’ 은 못쓸 거라는 ...
    Date2019.04.17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73
    Read More
  9. 날카로운 화살

    나는 Man of Letters 로서 삶의 뿌리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충격적인 체험을 하필이면 도서관에서 했다. 어찌 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책과 보내는 시간이 제일 많으니 도서관이 그런 체험을 할 확률이 높은 곳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대학 1학년 때...
    Date2019.04.16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797
    Read More
  10. 등잔 밑

    광주에 도착한 토요일에는 수도원에서 자고, 어제 명상의 집으로 내려오다. 만개했던 벚꽃이 지고 있다. 진달래, 개나리 등은 벌써 졌고 영산홍이 몽우리를 터뜨리고 있다. 직시를 많이 한 덕에 라일락과 영산홍이 전처럼 나를 흔들진 못한다.   자격지심(自激...
    Date2019.04.15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34
    Read More
  11. 나귀

    어제 ktx로 광주수도원에 오다. 진이 빠지는 어려운 여행이었다. 비는 오지 않고 꾸물거리던 날씨도 한 몫을 더하다. 송정에서 광주 수도원까지는 승용차를 이용했는데 몸과 마음에 긴장을 배가 시켰다. 승객을 신속하면서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하고 승객의 입...
    Date2019.04.14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70
    Read More
  12.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어제 저녁 올해 들어 처음 중고교 동창들을 만났다. 항상 내가 있던 양양이나 서울에서도 외진 변두리 우이동까지 찾아 왔다가 다시 먼 거리를 돌아가는 게 미안해 이번엔 내가 돈암동까지 나갔다. 담소를 하며 반주를 곁들여 저녁식사를 하다 보니 세 시간이 ...
    Date2019.04.11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86
    Read More
  13. Sensus plenior

    화사하게 피었던 목련(木蓮) 도 비바람에 색이 바래 아롱아롱 지고 있다. 누구는 “꽃잎 떨어져 바람인가 했더니 세월이더라!” 했었지. 나무에 핀 연꽃도 온 산을 물들인 진달래도 이렇게 봄날이 가고 있음을 알린다. 그나저나 너무도 오랜만에 들어보는 빗소리...
    Date2019.04.09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68
    Read More
  14. 창조되지 않은 빛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동방정교회에서는 일상으로 체험하는 창조된 빛과 창조되지 않은 빛을 엄밀히 구분한다.  후자에 대해서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더라도 나는 결국 자신의 체험밖에 ...
    Date2019.04.08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47
    Read More
  15. vorverständnis [전이해(前理解)]

    사지에 힘이 없고 물먹은 솜처럼 몸이 자꾸 땅에 눌어붙는 것 같아 어제는 마사지도 받았다. 요 며칠 몸이 많이 불편하여 오늘 미사주례도 부담이 되었는데, 공진단 덕분에 지친 모습 보이지 않고 잘 마쳤다.   오늘은 새벽 3시에 깨어 더 이상 잠이 안와 노느...
    Date2019.04.07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495
    Read More
  16. 산불

    어제 식목일에 새벽부터 동해안 산불소식으로 마음이 울렁거렸다. 마음이 뒤숭숭하여 알아보니 양양수도원과 솔이네는 안전하단다. 잠시 인연을 맺었던 옥계에서는 80 여 채가 전소되었다 한다. 인간이 무엇인지 자연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자각하는 때다.   ...
    Date2019.04.06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38
    Read More
  17. 낯선 길을 가는 소경

    어제는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도봉 도서관에 들려 책구경을 했는데 “PURPOSE DRIVEN LIFE” (목적이 이끄는 삶) 이란 제목의 책이 눈에 띄었다. 내 삶이 어떤 방향성을 갖고 나아가고 있다기 보다는 가끔씩 표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
    Date2019.04.04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73
    Read More
  18. 감수성

    솔이 에게 나의 체취가 밴 스웨터랑 츄리닝 바지를 택배로 보냈다. 솔이가 집안에서 잘 때 눕는 잠자리에 내 옷을 펼쳐 놓으니 냉큼 옷 위에 엎드려 코를 박고는 꼼짝도 않더란다. 평소 길 냥이 소리만 나도 흥분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던 녀석이, 밥달라...
    Date2019.04.02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66
    Read More
  19. 하느님의 말씀

    돌아보면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이 넘게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히 나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시편이나 말씀을 많이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믿는다. 마음에 와 닿기에 자연히 기억하게 된 시편귀절이나 말씀들은 위기나 결단의 순간에 디...
    Date2019.04.01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58
    Read More
  20. 심재(心齋), 좌망(坐忘), 조철(朝澈)

    처음으로 내 마음 깊숙한 곳까지 뚫고 들어와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성서의 말씀은 마태오 복음 5장의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뵈올 것이다.” 이었다. 그 말씀이 씨가 되어 말씀과 만난 그날부터 크리스천이 되었고 이어 수도생활을 ...
    Date2019.03.31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359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97 Next
/ 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