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박태원 가브리엘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복음 사색

Homo homini lupus est. 호모 호미니 루뿌스 에스트. 사람은 사람에게 늑대다.

by 후박나무 posted Aug 21,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벌써 십여 연전의 일이 되었다. 종교 간의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평화공존하기 위한 에큐메니컬 운동의 일환으로 삼선교 씨튼 수녀원에서 한 달에 한 번씩 각 종교의 원로들이 돌아가며 강의를 하고 나누는 모임이 있었다. 하루는 종범 스님이 강의를 하실 차례였는데 상당히 늦게 오셨다. 미안해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불사(佛事)가 있어서 늦었다. 절에서 일어나는 일은 불상사(不祥事)도 불사(佛事)다.” 하셔서 좌중을 웃음 짓게 했다. 그때가 조계종 총무원장 자리를 놓고 스님들이 조계사에서 실력대결을 벌일 때였다. 권력을 향한 불타는 욕망을 어떤 미사여구로 미화하거나 가면 뒤에 숨김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양편은 치열하게 폭력으로 맞섰다.

 

뜬금없이 옛일이 떠오르게 된 것은 아직 청문회 날짜도 정해지지 않은 법무부 장관 후보를 둘러쌓고 일부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이 보이는 행태때문이다. 그들이 과연 나라를 위해서 저렇게 후보와 그의 가족, 가계전체를 도마에 올려놓고 의도적으로 왜곡과 곡해를 하며 생사람을 매장시키려는것일까? 그들이 이제껏 그려온 지극히 이기적인 삶의 궤적을 보면 그럴 리도 없고 그럴 수도 없으리라! 신학생때 아주 기본적인 문장부터 익히며 라틴어를 배웠다.

 

Homo homini amicus est. 사람은 사람에게 친구다.

Homo homini lupus est. 사람은 사람에게 늑대다.

 

겉으론 나라를 위하고 정의를 위해 그런 양 온갖 대의명분과 미사여구로 자신들의 행태를 포장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실체가 늑대임을 꿰뚫어 보고 있다. 차라리 적나라하게 권력을 쥐려는 욕망을 드러내던 조계종 스님들이 더 나아 보인다.  그러기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선 사람이 사람에게 친구이기 보다 늑대가 되는 경험을 더 많이 한다.

 

자주 이스라엘 최초의 왕을 사울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아비멜렉이 먼저다. 오늘 요탐은 아비멜렉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가시나무에 비견하였다. 남들은 다 자기분수를 알고 자기자리를 지키는데 허영심만 가득한 자들이 남의 자리를 탐내고 종국에는 자신과 이웃에게 해를 끼친다는 이야기다. 또 이런 자들은 자기 몫을 받고서도 사회적 약자가 복지혜택을 받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복지정책을 축소하고 사회안전망을 제거하고자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하신 말씀중 자주 나를 돌아보게 하는 말씀은 “주님,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이다. 얼마나 자주 우리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며 하는가? 그러기에 유한한 인간이면서도 무한한 죄를 짓게 된다.


  1. 물처럼 바람처럼

    지난 토요일 밤 10시경 동기인 마티아 수사의 어머님이 선종하셨다. 3주전부터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라 갑작스럽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부고를 듣게 되는 마음은 헛헛하다.   평생을 동굴에서 한 방향만 보도록 묶여 생활한다는 플라톤의 비유...
    Date2019.04.29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51
    Read More
  2. 성. 토마스 기념성당

    아마 90년대 후반 즈음일 터……. 인도의 방갈로에서 회의를 마친 후 마 신부님이 사목하시는 남부의 코친에 들렀었다. 그때가 나로서는 3번째 인도 방문이었다. 뭐 흔히 하는 말로 인도를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고. 그만큼 매...
    Date2019.04.28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87
    Read More
  3. 교도소

    어제 치과에서 의치를 만드느라 한 시간 가까이 이를 갈아댄 여파인지 어쩐지 오늘은 새벽 1시에 깨어 꼬빡 밤을 새었다. 요한 23세 께서는 당신의 만년 저널에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태어나기에도 죽기에도 좋은 날이다” 하셨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
    Date2019.04.26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82
    Read More
  4. 정지용의 '고향'

    예년보다 거의 일주일이나 빨리 온 더위로 꽃들이 절기에 맞게 순서대로 피는 게 아니라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피고 바쁘게 져 버린다. 꽃들도 마치 ‘바쁘다 바빠’ 하는 듯하다. 오늘 아침 미사후 거의 2주 만에 우이령을 오르다. 우이령은 그래도 높이가 있어 ...
    Date2019.04.24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47
    Read More
  5. '갈릴레아로 가서 다시 시작하라!

    한 주간이 조금 넘게 광주 수도원에 머물다 오다. 그동안 성. 삼일 전례와 연례피정 강사도 하고! 아무리 KTX를 타고 다닌다 해도 여행은 여행인가보다. 차를 타는 시간은 단축될지라도 몸이 받는 피로감은 동일한 것 같다. 21일 상경한 후 22일 다시 아산병원...
    Date2019.04.23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96
    Read More
  6. 엑서더스

    이집트의 은수자 바오로라는 내 영세명처럼 두메꽃으로 살고자 수도원에 왔는데, 어째 이곳이 산 아래 저자거리보다 더 번다하다. 꽃이야 어디에 피든 누구에게 보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자신을 표현하니 모든 꽃이 두메꽃임은 알겠다. 저자거리...
    Date2019.04.20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75
    Read More
  7. 성 금요일

    https://youtu.be/fcWo1hKHu40   오늘 성 금요일 십자가 경배는 "Miserere mei, Deus"를 들으며 시작했다. Gregorio Allegri(1582-1652) 가 다윗의 참회시인 시편 51에 곡을 붙인 것으로서, 성주간 동안 시스티나 성당에서 5부 아카펠라 합창단이 부르는 성가...
    Date2019.04.19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60
    Read More
  8.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과 이명박의 '대통령의 시간'

    20대 전반에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었다. 페이지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자신을 가감 없이 드러내던 그 용기와 진실성에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동시에 나는 아마 나이 들어서도 평생 ‘고백록’ 이라든가 ‘회고록’ 혹은 ‘자서전’ 은 못쓸 거라는 ...
    Date2019.04.17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73
    Read More
  9. 날카로운 화살

    나는 Man of Letters 로서 삶의 뿌리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충격적인 체험을 하필이면 도서관에서 했다. 어찌 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책과 보내는 시간이 제일 많으니 도서관이 그런 체험을 할 확률이 높은 곳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대학 1학년 때...
    Date2019.04.16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797
    Read More
  10. 등잔 밑

    광주에 도착한 토요일에는 수도원에서 자고, 어제 명상의 집으로 내려오다. 만개했던 벚꽃이 지고 있다. 진달래, 개나리 등은 벌써 졌고 영산홍이 몽우리를 터뜨리고 있다. 직시를 많이 한 덕에 라일락과 영산홍이 전처럼 나를 흔들진 못한다.   자격지심(自激...
    Date2019.04.15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34
    Read More
  11. 나귀

    어제 ktx로 광주수도원에 오다. 진이 빠지는 어려운 여행이었다. 비는 오지 않고 꾸물거리던 날씨도 한 몫을 더하다. 송정에서 광주 수도원까지는 승용차를 이용했는데 몸과 마음에 긴장을 배가 시켰다. 승객을 신속하면서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하고 승객의 입...
    Date2019.04.14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70
    Read More
  12.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어제 저녁 올해 들어 처음 중고교 동창들을 만났다. 항상 내가 있던 양양이나 서울에서도 외진 변두리 우이동까지 찾아 왔다가 다시 먼 거리를 돌아가는 게 미안해 이번엔 내가 돈암동까지 나갔다. 담소를 하며 반주를 곁들여 저녁식사를 하다 보니 세 시간이 ...
    Date2019.04.11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85
    Read More
  13. Sensus plenior

    화사하게 피었던 목련(木蓮) 도 비바람에 색이 바래 아롱아롱 지고 있다. 누구는 “꽃잎 떨어져 바람인가 했더니 세월이더라!” 했었지. 나무에 핀 연꽃도 온 산을 물들인 진달래도 이렇게 봄날이 가고 있음을 알린다. 그나저나 너무도 오랜만에 들어보는 빗소리...
    Date2019.04.09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67
    Read More
  14. 창조되지 않은 빛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동방정교회에서는 일상으로 체험하는 창조된 빛과 창조되지 않은 빛을 엄밀히 구분한다.  후자에 대해서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더라도 나는 결국 자신의 체험밖에 ...
    Date2019.04.08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47
    Read More
  15. vorverständnis [전이해(前理解)]

    사지에 힘이 없고 물먹은 솜처럼 몸이 자꾸 땅에 눌어붙는 것 같아 어제는 마사지도 받았다. 요 며칠 몸이 많이 불편하여 오늘 미사주례도 부담이 되었는데, 공진단 덕분에 지친 모습 보이지 않고 잘 마쳤다.   오늘은 새벽 3시에 깨어 더 이상 잠이 안와 노느...
    Date2019.04.07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492
    Read More
  16. 산불

    어제 식목일에 새벽부터 동해안 산불소식으로 마음이 울렁거렸다. 마음이 뒤숭숭하여 알아보니 양양수도원과 솔이네는 안전하단다. 잠시 인연을 맺었던 옥계에서는 80 여 채가 전소되었다 한다. 인간이 무엇인지 자연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자각하는 때다.   ...
    Date2019.04.06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38
    Read More
  17. 낯선 길을 가는 소경

    어제는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도봉 도서관에 들려 책구경을 했는데 “PURPOSE DRIVEN LIFE” (목적이 이끄는 삶) 이란 제목의 책이 눈에 띄었다. 내 삶이 어떤 방향성을 갖고 나아가고 있다기 보다는 가끔씩 표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
    Date2019.04.04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73
    Read More
  18. 감수성

    솔이 에게 나의 체취가 밴 스웨터랑 츄리닝 바지를 택배로 보냈다. 솔이가 집안에서 잘 때 눕는 잠자리에 내 옷을 펼쳐 놓으니 냉큼 옷 위에 엎드려 코를 박고는 꼼짝도 않더란다. 평소 길 냥이 소리만 나도 흥분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던 녀석이, 밥달라...
    Date2019.04.02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65
    Read More
  19. 하느님의 말씀

    돌아보면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이 넘게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히 나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시편이나 말씀을 많이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믿는다. 마음에 와 닿기에 자연히 기억하게 된 시편귀절이나 말씀들은 위기나 결단의 순간에 디...
    Date2019.04.01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58
    Read More
  20. 심재(心齋), 좌망(坐忘), 조철(朝澈)

    처음으로 내 마음 깊숙한 곳까지 뚫고 들어와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성서의 말씀은 마태오 복음 5장의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뵈올 것이다.” 이었다. 그 말씀이 씨가 되어 말씀과 만난 그날부터 크리스천이 되었고 이어 수도생활을 ...
    Date2019.03.31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357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97 Next
/ 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