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박태원 가브리엘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복음 사색

종교와 영성

by 후박나무 posted Feb 04,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빗소리다. 오랜 가뭄 끝의 빗소리는 그야말로 ‘오감을 동원해 온 몸으로 그 순간을 통째로 느끼게 한다. 음과 음 사이의 침묵이 음악을 더욱 명징하게 부각시키듯, 빗소리는 침묵을 도드라지게 해 마침내 굉음이 되게 한다.

 

종교가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약 5000년 전 부터라는데 반해 영성은 인류의 시작과 그 기원을 같이한다고 한다. 종교란 인간내면에 무의식적으로 또는 카오스적으로 면면히 흐르던 영성이 특정한 지역의 환경과 인간의 필요와 만나 자신들만의 역사에 의해 도그마나 의식, 전례로 주조되고 정형화된 것이 아닐까! 그러기에 종교는 참여자들의 깨어있는 정도에 따라 순기능도 역기능도 가능하다. 자신이 거기에서 비롯된 뿌리인 내면의 영성에 도그마나 전례, 의식을 통해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여 신성이나 영원과 교류를 하게하는 순기능도 가능하지만, 일부 광신도들은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편협하게 사람을 나누고 집단 이기주의에 갇혀 ‘당신들의 천국’을 추구하여 ‘함께 사는 세상을’ 더 어렵게 하기도 한다.

 

예수가 유대교 지도자들과 충돌하는 배경에는 편협한 경전의 이해를 바탕으로 사람과 사람을 단절시키고 영원과의 교류를 못하게 하는 종교의 역기능과 맞닥뜨릴 때다. 적어도 믿을 도리나 정형화된 전례 등으로 예수가 고정 되기 전에는 말이다.

 

87년 미국 전역에 흩어져있는 고난회 뉴욕관구와 시카고 관구 소속의 고난회 수도원을 둘러보며 미리 보았던 우리의 미래가 현실화되고 있다. 여러 요인 중에서도 나는 종교가 화석화되어 사람들이 무언지도 모르면서도 애타게 찾는 그 무엇을 생생히 밝혀내지도,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고장 난 녹음기처럼 흘러간 옛 노래만 반복해온 탓이라 생각한다.

 

온고 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옛것을 배워 충분히 이해하여 새로운 의미를 스스로 터득한다면 스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화석같이 굳어 말라비틀어진 뼈무더기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원효대사가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듯이 소뿔에 책상이라도 얹어놓고 사람들이 붐비는 저자거리를 어슬렁어슬렁 소를 타고 다니면서 경전을 새롭게 이해해야 할 필요도 있다. 에제키엘이 본 환시, 하느님의 숨이 말라비틀어진 뼈무더기를 스치자 그들이 다시 본모습을 찾았다는 이야기는 저자거리에서 서민들의 애환을 접할 때 새로운 눈을 뜨게 되어 ‘대승기신론소’를 새롭게 쓸 수 있었다는 말로 들린다. 그런 식으로 인문학을 가까이 할 때 까맣게 잊은듯하던 감수성이 다시 돌아오고 우리의 돌 심장도 살 심장으로 변화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성서가 고리타분한 꼰대들의 잔소리만이 아니라, 거기에는 인문학적 깊이나 아름다움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글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 뒤의 영성까지 닿았으면 한다.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BY ROBERT FROST

 

Whose woods these are I think I know.

His house is in the village though;

He will not see me stopping here

To watch his woods fill up with snow.

 

My little horse must think it queer

To stop without a farmhouse near

Between the woods and frozen lake

The darkest evening of the year.

 

He gives his harness bells a shake

To ask if there is some mistake.

The only other sound’s the sweep

Of easy wind and downy flake.

 

The woods are lovely, dark and deep,

But I have promises to k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1. Ego

    마르코 복음을 셋으로 나눌 때 1부는 예수의 초창기 소명과 병자를 고치고 가르치던 갈릴레아에서의 활약상을 소개하며, 사람들의 부응이 커질수록 기존의 종교 세력과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이 격화됨을 알린다.   유명한 제자교육 부분은 셋 중 가운데 토막으...
    Date2019.02.26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76
    Read More
  2. 좌선(坐禪) 과 동선(動禪)

    오늘 오랜만에 길게 앉았다. 긴 시간 미동도 없이 앉으면 마비가 더 심해져서 좌선(坐禪)은 지양하고 동선(動禪)을 한다고는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오랜만에 길게 앉으니 부서져 산지사방으로 흐트러졌던 몸의 조각들이 재정비되어 제자리를 찾아 드는 것 같다...
    Date2019.02.25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47
    Read More
  3. 읽기와 쓰기

      주일날은 아침 일찍 직원들을 출근시켜야하기에 우이령에는 못 오르고 운전을 하다. 피정자들이 3팀이나 있어 주차장이 몹시 혼잡하다. 대부분의 차는 가지런하게 주차했으나 꼭 자기 편한 것만 보이는 환자들 덕에 새벽부터 차를 빼느라 애 좀 먹었다. 주차...
    Date2019.02.24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243
    Read More
  4. 잊지 못할 일!

    베드로와 야고보도 요한처럼 천명을 다하여 만년에 이르렀다면 질풍노도(疾風怒濤) 와 같이 살며 겪은 여러 체험 중에서도 ‘타볼 산에서의 체험’ 은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번개가 번쩍 세상을 비출 때 희미하던 세상은 비로소 선명하게 자신을...
    Date2019.02.23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44
    Read More
  5. 반석같은 믿음

    예수님은 당신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던 치유를 믿음의 결실로 보았다. 예수는 “내가 너를 살렸다(치유했다)” 고 말하지 않았을 뿐더러 심지어 “하느님이 너를 살렸다(치유하셨다)” 는 말도 하지 않고 다만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치유했다)” 고 한다. (...
    Date2019.02.22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65
    Read More
  6. 서품 32주년

    32년 전 오늘 서울 명상의 집에서 강우일 베드로 주교님에게 사제서품을 받았다. 강 주교님으로서는 당신이 주교로 서품된 후 처음 주관하신 사제서품식이었다.   1987년 2월은 당사자인 나는 물론이고 성가대나 전례를 비롯해 여러 행정적인 일까지 준비해야 ...
    Date2019.02.21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34
    Read More
  7. Life-Style

    노아에게 홍수후의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알렸던 비둘기는 종종 성령을 상징하는 메타퍼로 쓰인다. 세자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예수가 물에서 올라 오실 때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당신에게 내려오시는 것을 보았다. 그 때 하늘에서 “너는 내 ...
    Date2019.02.20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96
    Read More
  8. 예수신원의 비밀

    날씨 덕분에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몸으로 우이령에 오르다. 오를때만해도 쌓인 눈은 그리 많지 않았으나 영의 정상에 서니 잿빛하늘이 보이며 눈보라가 치기 시작했다. 내려오는 길에 눈발이 굵어지더니 폭설이라도 내릴 기세다. 오랜 가뭄 끝이라 한편 반갑...
    Date2019.02.19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10
    Read More
  9. 자유인

    2019. 2. 18   몸도 마음도 차분히 글을 쓸 형편이 못되어 자주 빠지게 된다. 예수 고난회 홈페이지를 담당하던 형제가 복음사색이란 코너를 마련하여 글쓰기를 부탁한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 매일매일 써야 한다는 강박 없이 할 말이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 ...
    Date2019.02.18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09
    Read More
  10. 부고

    어제 남 교수님이 다녀가셨다. 남종삼 성인의 후손이라는 빛과 그림자를 모두 지고 사신분이다. 지금은 90세가 가까우니 이도 저도 다 내려놓은 상태이시리라. 사실 남 교수님보다 그 짐을 더 지며 살 수밖에 없었던 분은 일찍 작고하신 사모님 정 정원 로사 ...
    Date2019.02.14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68
    Read More
  11. 무아

    어제는 잠이 안와 아주 일어나 앉아 책을 보다가 밤을 새웠다. 이렇게 한 숨도 못잔 날은 어떻게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 될까? 동명의 영화는 이런 방법을 제시한다. 일본의 선을 맛보여주는 듯.   “오감을 동원해 온몸으로 그 순간을 맛본다 여름에는 찌는...
    Date2019.02.12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28
    Read More
  12. 들쭉날쭉

    오늘 몇 달 동안 우리와 함께 생활하던 치차오가(중국인 지원자 신학생) 호주로 떠났다. 치차오를 보며 새삼 87년 루키(새내기) 신부로 미국 수도원을 방문할 때 할아버지 신부님들이 나를 쳐다보던 눈길을 더 이해하게 된다. 그래 나도 저렇게 하느님을 체험...
    Date2019.02.10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11
    Read More
  13. 바다 내음

    “제일 추운 때가 입춘인 건 옛사람들이 이제 곧 봄이 온다 생각하며 독한 겨울을 극복하려던 거겠지”   영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중 한 대사인 위의 말이 민망할 정도로, 절기(節氣)상 입춘(立春)은 커녕 정월 초하루인 오늘의 온화한 날씨는 ‘이제 곧 ...
    Date2019.02.05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48
    Read More
  14. 종교와 영성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빗소리다. 오랜 가뭄 끝의 빗소리는 그야말로 ‘오감을 동원해 온 몸으로 그 순간을 통째로 느끼게 한다. 음과 음 사이의 침묵이 음악을 더욱 명징하게 부각시키듯, 빗소리는 침묵을 도드라지게 해 마침내 굉음이 되게 한다.   종교가 ...
    Date2019.02.04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18
    Read More
  15. 빵과 포도주

    새 해를 맞아 2019년이라 쓰기가 거북살스러웠는데 한 달이 훌쩍 가버렸다. 연중 3주일 월요일부터 우리는 마르코 복음을 읽고 있다. 복음사가는 특히 복음 전반의 중심적 비유인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중심으로 예수의 신원에 얽힌 비밀을 언급하며 독자...
    Date2019.02.01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24
    Read More
  16. 혁명

      루카 복음사가는 이사야를 인용하여 예수가 일생에 걸쳐 하신 일을 요약하여 제시한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 주고...
    Date2019.01.27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38
    Read More
  17.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과 인고(忍苦)의 나날이 둘이 아닐 것 같다.

    어쩐 일인지 기운이 무척 달린다. 컴앞에 앉기도, 파편처럼 흩어진 생각들을 모을 마음의 힘도 없다. 이럴 때는 또 이리 살아내야겠지!   “오감을 동원해 온몸으로 그 순간을 맛본다. 여름에는 찌는 더위를 겨울에는 살을 에는 추위를, 매일이 좋은 날이란 그...
    Date2019.01.25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63
    Read More
  18. 영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보통 우리는 하느님의 현존에서 멀리 떨어져 헤매다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애쓴다. 그렇게 잃어버린 낙원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은 단식 외에도 참 다양하다.   일본영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의 다도도 그런 여러 갈래의 길중 하나일 것이다. 그때그때...
    Date2019.01.21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384
    Read More
  19. Quantum leap-양자도약

    오늘 이사야서와 요한복음을 읽으며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몇 대목이 떠오르다. 바빌로니아로 잡혀갔던 동포들의 귀환을 제2의 Exodus 로 여기며 대단히 화려하고 웅장한 귀환으로 묘사하던 제 2 이사야.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을 뿐더라 초라하기까지 하...
    Date2019.01.20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13
    Read More
  20. 용서

    죄는 보통 자기모순이나 자기부정이므로 사람을 분열시킨다. 동시에 상반된 것을 원하거나, 너무 많은 것을 원하기에 움직임에 장애가 있거나 전혀 움직이지 못하게 마비가 되기도 한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생겨났던 천지 창조때의 말씀처럼 “얘야, 너...
    Date2019.01.18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121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97 Next
/ 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