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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 가브리엘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복음 사색

갈릴레아!

by 후박나무 posted Apr 0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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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미국 관구를 둘러보고 돌아와 쓴 글이니 30년 묵은 글이다.

 

화려한 십자가!

 

제가 처음 미국에 갔던 때가 80년대 입니다. 당시 우리 수도회는 지금처럼 독립된 관구(한국순교자들의 관구) 가 아니라 수도회 조직상 미국 시카고 관구(성. 십자가 관구)에 속한 지부였지요. 종신 서원한 한국회원의 숫자도 열 명이 안되었으니 독립은 무리였고요. 지부였기에 독자적으로 총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시카고 관구총회에 대표자를 파견하여 참여하는 형태였습니다. 저는 당시 새 신부로서 한국지부의 Delegate(대표)로 디트로이트에서 개최되는 관구총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L. A 를 통해 입국한 뒤 새크라멘토, 샌. 프란시스코, 디트로이트, 시카고, 세인트루이스, 루이빌, 뉴욕, 워싱턴 DC, 휴스턴, L. A, 시에라마드레, 하와이등 근 세 달에 거쳐 미국전역을 그야말로 싸돌아 다녔습니다. 그냥 여행을 다닌 것이 아니라, 우리관구의 수도원들을 순례한 겪이지요. 그렇게 다니던 도중 특히 뉴욕의 자마이카 수도원에서 개최한 PASSIONIST HERITAGE SEMINAR(예수고난회의 유산 세미나) 에 참석한 후 왠지 모르게 마음이 몹시 울적하게 되었지요. 스스로 생각하기를 뿌리를 내릴 겨를도 없이 이곳에서 이삼일, 그리고는 다시 비행기타고 다른 수도원으로 옮겨가고 다시 자동차로 하루나 이틀 고속도로를 달리는 등등 계속 이어지는 여행에, 아마 마음이 한군데에 머물면서 깊이 쉬고 돌아볼 여유가 없어서 그런 것이겠지 했었습니다.

 

미국의 수도자들을 보면서 저렇게 산다면 사회에서 사는 것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 하는 정체성에 대한 회의도 갖게 되었고요. 그때 결심한 것이 나는 나중에라도 미국에선 공부하지 않겠다였지요. 학문적으로 무언가 배울 수 있을지는 몰라도 더 중요한 생활양식 면에서 좋은 것을 배울 수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사실 그 후 저는 미국이 아니라 유럽으로 공부하러 갔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 미국인들의 소비주의와 개인주의에 어느 정도 질려 버렸었지요. 저런 생활을 유지하느라 제3세계를 착취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지금은 누구 욕할 필요도 없이 우리가 그렇게 생활하고 있지만요. 또 문화충격도 있었겠지요.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와이에서 몇 일간 쉬면서 정리해보려고 했지만 불발되고 말았습니다. 하나우마 베이등 수영과 스노클링하기에 너무 좋은 곳이라, 죽치고 앉아서 기도하기에는 영 아니더군요.^^

 

미국의 L. A 공항에 처음 내렸을 때의 문화적 충격에 대해 한마디 안할 수가 없군요. 그때가 6월 1일 이었는데, L. A 는 더 더웠지요,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도시니까요. 입국수속을 밝고 공항대합실을 걸어 새끄라멘토행 국내선을 타러가면서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몰라 당황하여 쩔쩔 매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마치 제가 못 들어올 곳에 들어온 것 마냥, 다른 사람들이 모두 저를 비난하면서 쳐다보는 듯이 느꼈으니 걸어가면서도 가슴은 쿵쿵 뛰고 얼굴은 빨갛게 되었지요. 물론 현실적으론 그런 일은 없었지만 제가 심리적으로 느낀 것은 마치 제가 잘못하여 여자목욕탕에 들어온 그런 기분이었지요. 백주 대낮의 공공장소인 공항대합실에서 여자들이 제가 당시 보기에는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고 돌아다니는 것이었어요. 그러니 새 신부인 제가 느끼는 충격이 어떻겠습니까? 몇 년 후 한국에서도 핫 팬티나 그런 것이 유행 했지만 당시만 해도 그런 옷차림으로 시내를 활보한다면 스캔들이 되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여하튼 저는 그런 식으로 문화충격이라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그런 울적한 무드는 지속 되었고요. 뭔가 미국에서 받은 어떤 영향 때문인지는 알겠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표현해낼 수가 없더군요. 창세기에 보면 야훼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창조물들 하나하나의 이름을 짓게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름을 붙인다는 것, 언어로서 표현해 낸다는 것은 그것을 재창조하는 것인 동시에 지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이덱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 이라고도 표현했지요. 언어로 명료하게 표현하게 될 때 비로소 그것은 형태를 갖춘 존재가 되고, 우리는 그때에야 이 구체화된 존재를 다룰 수 있게 되지요.

 

하느님의 말씀인 “다발”의 특징은 말씀이 계시면 그에 상응하는 실재가 존재케 된다는 것입니다. 빛이 있으라 하면 빛이 생기 듯이요.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에게도 그런 창조력이 있습니다. 특히 어떤 사람의 강론은 듣는 사람의 마음속에 이미 존재하기는 하였지만 마구 헝클어진 혼돈의 형태로 있든가 아니면 있는지 조차도 모를 정도로 흩어져 미미하던 것들을 한데 모아 뚜렷한 하나의 존재로 형성시켜 줍니다. 듣는 사람은 들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문제를 의식하게 된다든가 아! 하는 깨달음의 체험 혹은 문제 자체가 해소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저도 제 마음속에 있는 그 무엇이 스스로 형태를 지어 수면위로 올라오도록 기다려야 했습니다. 닭이 알을 품듯이 그냥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 무엇을 품고 기다리는 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지요. 기도란 그런 것이거든요! 기도란 기다리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무엇을? 기다림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하던가요. 여하튼 9월에 연례피정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와서 친구가 주임으로 있던 흑산도에 가서 한 주일가량 앉아 알을 품을 수 있었지요.

 

시간을 갖고 기다리니, 점차 무엇이 나를 울적하게 했는지 떠오르더군요. 미국의 수도원들을 방문하면서 제가 무의식중에 받았던 인상은, 거의 모든 수도원이 양로원과 같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수도회와 그 분위기밖에 모르던 저에게는 이곳은 이런 곳인가 보다 했지만, 제 마음 깊은 곳에서는 마치 나의 미래를 미리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었습니다. 저 사람들도 나처럼 젊은 시절 청운의 꿈을 품고 한 생을 바치겠노라 하면서 예수를 따라 나섰던 사람들 아닌가! 그런데 이제 저렇게 자기들의 뒤를 따라오는 후배들도 없이 저희들끼리 늙어가는 저 모습이 과연 나의 미래가 아니라고 누가 보증할 것인가! 60이면 한참 나이고 거의가 70, 80 이 된 할아버지들이 모여 사는 수도원!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이 없어 아직도 여러 가지 일을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 내가 후일 저렇게 된다면 나는 내 일생에 만족하면서 저들처럼 기쁘게 살면서 늙고 죽어갈 수 있겠는가? 미리 본 나의 미래가 현재의 나를 울적하고 의기소침하게 만든 것이었지요.

 

드디어 어렵사리 찾았지요. 기분을 울적하게 만든 요인을……. 그런데 이런 발견에 곧 뒤따라 깨달음이 왔습니다. 이런 반문을 하게 되었지요, 스스로. 네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면 그런 미래가 너의 미래라고 해서 그렇게 실망할 이유가 무엇인가? 오히려 너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따라 나선다고 하면서도 너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화려한 십자가를 따라 나선 것이 아닌가? 그랬기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정말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따라나섰다면 실망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하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선택할 때 한 가지의 이유만으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란 것을 대학 초년생 심리학 시간에 배웠습니다마는 그 의미는 살아가면서 새록새록 더 배우게 되더군요. 성소의 동기도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인정하고 싶은 것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 또 자신이 꿈도 꾸지 못하던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힌 것일 겁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네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택했다고 하셨나봅니다. 살아가면서 정화되고 심화되어야 할 필요가 그런데 있겠지요. 이런 동기의 정화와 심화는 저와 같이 이런 길을 가는 사람만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성화란 성직자나 수도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닐 테니까요!

 

 

제자들도 예수와 함께 갈릴레아에서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이어지는 길을 함께 걸었지만 여정을 온전히 마친 분은 예수님뿐이었다. 알게 모르게 ‘화려한 십자가’를 쫒던 제자들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난 것은 事必歸正이라고나 할까? 그들은 이 여정을 다시 시작해야한다. 부활한 예수는 제자들을 다시금 갈릴레아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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