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대학 2학년 때 쯤 이었을 듯. 한번은 마석 선산에 계신 어머님을 뵙고 기차를 기다리다 역 근처의 선술집에 들른 적이 있다. 막걸리 반 주전자를 혼자 홀짝거리고 있으니, 늙수그레한 주인아주머니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셨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남자들은 잘난 체 하는 맛에 산다고……. 뭐 꼭 남자들뿐이겠는가? 솔이도 사람들이 많이 오면 괜히 사이를 누비며 으스대는데…….ㅋㅋ 소극적으론 존재가치를 증명하려는 강박에서부터 과대망상까지 잘난 체는 참 뿌리 깊다.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는 사랑받으려는 욕구의 왜곡된 표현 아닐까? 잘난체는 술집에서 훨씬 더 증폭되어 나타나기에 주모는 그렇게 말씀하셨으리라.
눈이 더 밝아졌는지, 아님 반면교사 덕분인지 내면의 신성인 빛이 나라는 덮개를 통과하며 어떻게 변질, 왜곡되는지 아님 맑은 프리즘을 통과한 빛처럼 영롱하게 되는지 더 잘 보인다. 사목자로서 정화된 정도에 따라 비워지고, 영원한 생명도 실감하게 되니 잘난 체할 나도 점차 없어지게 되겠지. 물론 그 역도 현실이어서, 예수님은 없고 온통 나로 도배하면서도 봉사한다고 착각하는 수도 다반사더라.
오늘 사도행전 14:11 군중은 바오로가 한 일을 보고 리카오니아 말로 목소리를 높여, “신들이 사람 모습을 하고 우리에게 내려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바오로는 그들이 틀렸다고 했지만, 바오로 안에 있는 하느님이 자신을 비운 바오로 덕분에 그대로 드러났다는 점에선 틀린 게 아니다.
적어도 자신이 옷걸이 인줄은 잊지 않을 은총을 청한다.
박태원 가브리엘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