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토 1서 1:26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세속적인 견지에서 볼 때에 여러분 중에 지혜로운 사람, 유력한 사람, 또는 가문이 좋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었습니까?
그래서 교황님도 당신의 성소를 “Miserando atque Eligendo” - “불쌍히 여기시어 선택 하셨다”로 이해하신다. 부르심을 받았을 때, 구원되었을 때, 부활체험으로 삶의 허무를 극복하는 의미를 찾았을 때, 위로부터 거듭 났을 때, 타볼 산의 예수와 같이 미래에 대한 비전으로 빛났을 때! 그때는 또한 사도 바오로의 말처럼 형이상학적인 인생고도, 생활에서 오는 민생고도 최고조에 달했던 때였을 것이다. 산이 높으면 계곡도 깊고, 고향을 떠난 사람이 고향을 찾는 법이다.
주일복음 성전정화 일화의 전후 맥락을 살펴보니, 가나의 혼인잔치 이야기가 앞에 나오고 이어서 니코데모와의 대화가 이어진다. 맹숭맹숭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켜 파장이 될 뻔한 혼인잔치에 흥을 돋궈주는 사람. 종교란 게 율법체계가 아니라 삶을 신명나게 하는 것임을 보여주며, 아울러 신앙인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예시한다.
사흘 굶으면 포도청의 담도 뛰어넘는다고 民生苦의 문제는 너무도 본능적이기에 쉽사리 종교의 영역에서도 자신의 논리를 관철시켜, 不知不識간에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고 만다. 민생고의 문제를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종교의 영역과 차별을 둘 수 있는 사람, 무의미를 신명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 사회현실은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이런 교우들을 고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