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유난히 세입자들에게 마음이 많이 간다. 비, 바람, 추위, 더위를 피해 가족들끼리 오붓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위협받는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고단할까!
수도권 인구가 2천5백만인데, 그중 자기 집 소유 율이 2014년 기준 51.5 %, 자기 집 점유율이 45.9 %다. 그러니 줄잡아 2천5백만중 4분의 3인 천팔백만 명 이상이 셋집에 사는 거다. 전세 계약기간이 만기 2년이니 올해 미친 전세 값에 한숨짓는 인구가 최소한 구백만 명 이상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구체적 개선책 없이 평화를 논하는 건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이사야의 말처럼 평화를 원한다면 정의를 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정책으로 구체적인 처방을 내리는 건 정치의 몫이다. 정치가 제 몫을 다하지 못할 때 비판은 할 수 있지만 종교가 그 역할을 대신해서도 안되고 할 수도 없다. 오늘 미스터리한 불뱀의 상징을 통해 종교의 역할이 무엇일지 유추해본다. 사람들이 불뱀에 물려 고통스럽게 죽어갈 때, 불뱀을 단죄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불뱀의 죄를 떠안고 희생되는 것…….이사야 53장 고난 받는 야훼의 종이란 이미지가 겹쳐진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셨다…….”
니코데모와의 대화 말미에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고 하신다. 여기서 그분을 믿는다는 것의 의미를 나는 루카복음에만 나오는 죄수와의 대화에서 발견한다. 오른쪽 죄수는 모든 것을 끝장내는 죽음이 목전에 다가온 순간에 자신을 온전히 포기하고, 맹목적이다시피 예수님을 믿는다. 그리곤 자신과 그리 처지가 다르지 않을 예수에게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한다. 그는 예수로부터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란 말씀을 듣는다. 내 체험을 보면 그는 분명 그날부터 이제까지 낙원에 있을 것이다. 영악하게 앞뒤를 재는 현대인에겐 너무도 맹목적이겠지만 이것이 믿음이다. 그리고 그런 믿음은 하루아침에 가능한 것도 아니더라.
박태원 가브리엘 C.P. |